발전하는 춘배
[독서] 기술의 침략, 기록과 기억과 나; 『경험의 멸종』 본문
책 정보
- 『경험의 멸종』
- 크리스틴 로젠 저
- 이영래 역
- 어크로스 (2025)
전반적 감상
이 책에서 '멸종되는 경험'은 기술이 매개되지 않은 경험. 즉 물리적이고 통제되지 않은 우연한 경험들이다. 이 책은 이러한 경험이 기술에 의해 대체되고, 소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기술은 우연을 멸종시킨다. 혹은 멸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모든 것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어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그에 따른 효율성을 누리려는 게 기술이다. 예측 가능하다면 한발 먼저 행동할 수 있고 이는 시간적인 효율성을 낳으며 시간의 절감은 비용의 절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이 발전할수록, 즉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변화들이 일어날수록 우리의 삶은 예측 가능해지고, 나아가 기술에 의해 결정되기까지 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진정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예측 불가능한 우연함들이다. 우연히 마주한 그림 같은 풍경, 우연히 들려온 좋은 음악, 우연한 만남, 대화, 사랑.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건 이 우연한 경험들이고 기술은 이것을 통제한다.
기술이 우리의 삶을 침범하는 것을 막을 수도, 막을 필요도 없지만, 기술이 우리의 우연한 즐거움을 침범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인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기술의 침략에 우리는 너무나 무감각하다.
기록과 기억과 나
문자가 없던 시기 기억은 오로지 개인의 뇌가 허용하는 수준에서 유지되었다. 문자가 발명되고 기억의 수명은 늘어났다. 기록이 탄생한 이래로 기억은 기록에 사용된 매개물 ― 종이, 잉크, 사진, 하드디스크 ― 이 존재하는 한 영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걸 기억이라 부를 수 있을까?
기억은 아무리 강렬했을지라도 어떠한 트리거가 없으면 떠오르지 않는다. 무의식의 어딘가에 가만히 숨어 있다가, 미묘하게 연관된 어떤 자극을 받으면 연쇄적으로 기억들이 떠오른다. 우연히 길바닥에 떨어진 100원짜리 동전을 보고, 어린 시절 50원 동전으로 사 먹었던 돌사탕의 단 맛이 떠오르거나, 혹은 어린 시절 용돈으로 받았던 만 원짜리 지폐를 잃어버리고 그 지폐를 찾기 위해 울면서 뛰어다녔던 어릴 적 동네의 길거리 풍경이 떠오르는 것이다. 기록을 다시 볼 때에도 이와 유사한 연상 작용을 거친다.
다시 말해, 기록을 통해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기록 속에 적힌(혹은 사진에 찍힌) 바로 그 장면 뿐만 아니라, 그 기록과 약간의 관련이 있는 무언가들 전부다. 기록을 하는 건 우리의 뇌가 그 무언가를 검색할 수 있도록 색인을 생성하는 것과 같다. 색인이 없어도 검색은 가능하지만 속도가 느리다. 어쩌면 너무 느려서 검색하다 지쳐 포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록이 있다면 훨씬 빨리 목표 기억에 접근할 수 있고 유효한 시간 ― 우리의 의지가 허락하는 시간 ― 내에 기억을 검색하는 데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럼 모든 것을 기억하기 위해 모든 것을 기록하면 어떨까? 예컨대 24시간 365일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영상을 찍었다 치자. 이것이 정말 의미 있는 기록일까? 색인의 양이 늘어날 수록 색인 자체를 뒤지는 시간도 늘어난다. 이러한 기록은 기억을 떠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럼 기록을 얼마나 하는 게 적당할까?
잠깐, 굳이 기억을 해야 할까? 우리는 왜 기억을 해야만 하는가? 기억할 필요가 없다면 애써 기록할 필요도 없으므로 생각해볼만 한 질문이다. 기억의 쓸모는 무엇인가?
나의 정체성은 기억에서 온다. 오늘 자고 내일 일어났더니 모든 기억이 사라졌다. 혹은 전혀 다른 기억 ― 옆집 철수의 기억 ― 이 원래의 기억을 덮어써버렸다. 이 경우 내일의 나는 더이상 나라고 부를 수 없다. 사람의 정체성은 온전히 기억에 따라 결정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내 정체성의 일부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을 해야만 한다. 기억이 사라지면 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영화 코코가 생각났다)
다시, 기록은 도구다. 좋은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기억의 소멸을 온전히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억의 형태는 세계 그 자체인 데 반해 기록의 형태는 몇 가지 ― 언어, 사진, 동영상, DNA ― 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narrow type casting은 데이터의 손실을 야기한다!) 기억은 사라지는 게 자연스럽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두었을 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레' 변하는 모습을 의미한다. 사과가 땅에 떨어지고, 물이 식고, 엔트로피가 높아지고, 기억이 사라지고. 기록을 통해 억지로 기억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은 사과를 들어 올리고, 물을 끓이고, 엔트로피를 낮추는 일과 같이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모든 걸 기록해서 기억하고자 하는 건 제2종 영구기관을 만들려는 것과 같다. 우리는 적당한 수준에서 기억―나―에 대한 욕구와 자연스러움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우리의 여행이, 우정이, 추억이, 사랑이, 사라지기에 더 아름다운 것으로 남을 것이다.
독서 중 노트
"시계로 인해 사람들이 배고픔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의심하고 시계의 지시를 따르게 된다."(26p)
"오늘날 '경험'이란 무엇인가?"(34)
기술이 감각을 조작하고 경험을 제공한다. 경험에는 육체가 필요한데 기술로 인해 육체 없이도 경험할 수 있다는 착각이 생겨났다.
"중요한 것은 내가 러시의 음악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을 받느냐가 아닌, 내가 러시의 음악을 들었다고 주장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다."(39p)
우리의 취향이 곧 나를 드러내고, 우리가 광고를 보고 사는 건 그 광고에서 그 제품이 비춰진 맥락, 그 경험이다.
더불어, 기억도 곧 나를 나타낸다. 기록을 남기고 공유하고자 하는 욕구에는 나의 기억, 즉 나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욕구가 숨어 있다. '나'를 기록을 통해, 기억을 통해 남들에게 알리고 싶은 것이다.
인간은 진화적으로 대면 상호작용에 맞도록 진화해왔다. 표정, 몸짓, 억양은 언어 사용 이전부터 사용된 의사소통 도구로써 우린 배우지 않고도 이것들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다.
"동기 향상 효과"(60-61p): 화면을 매개로 의사소통을 할 경우, 대면한 상황에선 포착될 수 있는 미세한 경련이나 떨림, 눈의 움직임 등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거짓말할 동기가 더 커지고 거짓말이 성공할 확률도 더 높아진다.
"우리는 손으로 적을 때 정보를 더 잘 유지한다. 손으로 기록할 때는 키보드를 이용할 때보다 속도가 훨씬 느려서 요약해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100p)
우리는 비효율적인 도구(손글씨)를 효율적이고 편리한 대안(키보드)로 바꿨다고 생각하지만, 그 대가로 학습방식에서의 치명적인 손실을 입었다.
결국 중요한 건 이 세계의 물리적 실체들과의 직접적인 경험들이다.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적 실체들과의 상호작용이 있는 경험이 '진짜' 경험이라는 것이다. 실제 사람과 면대면으로 소통하고, 실제 사람이 사람을 교육하고, 실제로 몸을 움직여 쓰고 그리고 만들며 이 세계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 진짜 경험이다.
기술은 분명 효율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효율성의 측면으로만 기술을 바라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효율성을 위해 우리는 반드시 어떠한 대가를 지불한다. 우리가 개선, 혹은 진보라고 여기는 것들은 대개 그 효율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진화적으로 우리의 몸은 기술적 세계가 아닌 물질적 세계에 맞추어져 있다. 디지털을 비롯한 신기술을 사용한 시간보다 물, 불, 돌, 나무와 함께한 시간이 훨씬 길기 때문이다. 효율성만을 위한 진보 ― 비물질적 세계로의 전환은 즐거움, 학습, 인지능력의 쇠퇴를 낳았다.
기다림도 경험이다.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람들은 점점 그 쓴 맛을 못 견디고 있다. 시간 선호(현재의 쾌락을 미래의 쾌락과 교환하려는 자발적 성향을 나타내는 척도, 165p)가 높으면 미래의 건강을 희생해 더 많은 고칼로리 음식을 먹는다. 미래를 위해 저축하기보다 현재의 즐거움을 위해 소비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기다리는 것을 참지 못한다. 잠깐의 뜨는 시간이 생기면 의미 없이 스마트폰을 본다. 게임을 하든 인스타를 보든 웹툰을 보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손가락을 움직여 정보를 얻는 데 주의를 쏟음으로써 잠깐의 비는 시간을 채웠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스마트폰 사용은 이러한 양상으로 변화 중인 것 같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여행지에서 실물을 직접 보는 것보다 그 실물을 '잘' 기록하기 위한 사진을 찍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 사람들은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 때 내 기억에 실제로 남는 장면은 실물이 아닌, 휴대폰 화면에 비친 실물의 이미지라는 걸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문장들
[프롤로그] 경험이 사라져가는 시대
경험의 소멸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택이다. (19p)
[1장] 직접 경험의 내리막
시계로 인해 사람들이 배고픔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의심하고 시계의 지시를 따르게 된다. (26p)
사회심리학 연구는 우리가 ... 경험을 통해, 즉 "갖는" 것보다 "하는" 것을 통해 더 큰 행복을 얻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37p)
중요한 것은 내가 러시의 음악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을 받느냐가 아닌, 내가 러시의 음악을 들었다고 주장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39p)
[2장] 대면 상호작용의 필요성
사람들은 늘 공적 공간에서 사적인 공간을 만들 방법을 찾는다. 그래야 공적 공간이 견딜 만한 곳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 주변 사람들을 잠깐도 알은척하지 않고 스마트폰 화면에만 집중하는 것은 사회적 무관심이 아니라 사회적 유리다. 오늘날에는 이런 사회적 유리가 공적 공간의 표준이 되고 있다. (66-67p)
물리적으로 구현된 존재로서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즉 같은 공기를 마시고, 말로 하지 않은 서로의 감정을 느끼고, 서로의 얼굴을 보고, 서로의 몸짓에 공감하는 것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 요소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주려면 그의 물리적 존재에 시간을 할애해야만 한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이런 모든 요구를 충족시킬 수는 없다. (87p)
[3장] 손으로 써야만 배울 수 있는 것
우리는 손으로 적을 때 정보를 더 잘 유지한다. 손으로 기록할 때는 키보드를 이용할 때보다 속도가 훨씬 느려서 요약해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00p)
"기존 문제에 대한 새로운 기술적 해결책을 마주한 지역사회는 그 기술이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만 확인하지 말고 그 기술이 무엇을 차단할 수 있는지 묻는 것이 현명하다." (118p)
손 글씨가 우리 삶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상황은 특정 경험들이 어떻게 소멸되는지를 보여준다. 경험은 상의하달식의 명령이나 하의상달식의 대중 운동을 통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약화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사라지는 것을 상실이라기보다는 진보와 개선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합리화한다. 기량이 약화되는 것과 동시에 수천 년에 걸친 인간의 경험도 사라진다. (122p)
[4장] 기다림과 지루함의 기능
작가 프랭크 파트노이는 "동물과 달리 우리는 멈춤으로써 프로그램된 반응을 무마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기다림의 방식이 우리를 다른 동물이나 기계와 구분해주는 셈이다. ... 인내심이 미덕이라면 지금 우리는 그 미덕을 기꺼이 파괴하고 있다. (132p)
결국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 것은 휴가 자체가 아니라 휴가에 대한 기대였다. 왜 우리는 그 즐거운 경험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려는 것일까? ... 기대가 즐거운 경험으로 이어질 때면 기다림이 즐거움을 한층 더 키운다. 그러나 기대와 놀라움이 실망으로 이어질 때면 우리는 거기에 할애한 시간을 낭비로 보는 경향이 있다. (163p)
[5장] 감정 길들이기
감정은 놀랍고 변덕스럽고 복잡하다. ... 감정은 극히 주관적이어서 측정하기가 어렵다. 당신을 웃게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눈물짓게 할 수 있다. 자신의 감정조차 완전히 식별할 수 없다. 자기기만은 인간 본성의 보편적인 특성 중 하나다. (175p)
감정마다 몸이 처리하는 속도가 다르다. ... 연구 참가자들이 ...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미덕에 대한 서술에 반응하기까지는 6~8초가 걸렸다. ... 기술이 선호하는 속도는 단 하나, '지금 당장'이다.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온라인에서 보낸다면 자신의 감정에 대해 숙고할 기회를 잃게 된다. (184p)
감정을 알려주는 기술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면서 우리는 집단적으로 감정적 기량을 잃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페이스북에 우리의 기억을, 구글에 우리의 호기심을, 휴대전화에 내장된 GPS에 우리의 방향 감각을 아웃소싱하고 있다. (203p)
모든 것에 "좋아요"로 반응하지만 그 무엇과도 감정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세상 (214p)
"존중, 이해, 사랑은 기술이 다룰 문제가 아니다" ... 그것들은 감정이다. (214p)
[6장] 기술로 매개된 쾌락
우리는 즐거운 경험을 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그 경험을 끊임없이 기록한다. (221-222p)
다시 말해 쾌락의 가장 큰 변화는 쾌락의 상당 부분이 데이터화된다는 점이다. (223p)
우리의 쾌락은 데이터로 축소되어 프로이트가 간절히 이해하고 싶어 했던 인간의 욕망에 대한 디지털 초상화가 되었다. ... 당신이 소비하는 쾌락, 즉 당신이 남기는 데이터의 자취가 곧 당신이다. (225p)
현대의 속도는 우리가 통제하지 않으면 우리를 통제한다. (241p)
우리는 특정한 방식으로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의 상상력을 지배하는 힘, 과거에는 예술과 종교가 가졌던 힘을 기술에 부여한다. (246p)
우리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는' 오락을 추구한다. ... 오늘날 우리는 예술이 기술과 같은 것을, 우리가 선호하는 경험에 즉각적이고 매끄럽게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주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예술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해야 한다. 우리 자신의 선호를 제쳐두고 다른 사람의 비전에 따르려는 자발성을 말이다. (251p)
[7장] 소멸하는 장소, 개인화된 공간
그 어느 때보다 서로가 '연결되어'있는 이 시대에 사회적 고립 비율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290p)
"요즘 커피숍에 앉아 있다 보면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는 들리지 않고 곤충 소리 같은 타이핑 소음만 들린다. 현실 세계의 공유 공간을 덜 사용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가상 세계를 찾게 되고, 연쇄반응으로 고립은 더욱 심해지며, 유형적 공유 공간에 대한 관심은 더욱 줄어든다." (298-299p)
소통하는 내용은 대부분 비언어적이다. ······직접 대면하지 않으면 상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300p)
파스퇴르는 우연한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다고 말했다지만 과잉 설계의 시대에는 우연한 기회가 누구에게도 오지 않는다. 아무것도 우연에 맡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308p)
[에필로그] 이 혼란에 저항하라
기억을 상기시키는 것들이 메타나 구글 같은 대기업 소유의 플랫폼에 있는 경우 우리는 그들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다. (3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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