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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공연, 시간, 기억, 아름다움;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본문

독서

[독서] 공연, 시간, 기억, 아름다움;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춘배0 2025. 10. 5. 14:03

책 정보

  •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 목정원 저
  • 아침달 (2021)

도입

친구가 추천해서 읽게 된 책이다. 최근 들어 책에 관심이 생기고 이런저런 책들을 읽긴 했으나 거의 다 비문학 혹은 소설이었다. 에세이는 살면서 읽어 본 기억이 없다. 소중한 친구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기회에 새로운 분야의 책도 읽어 보면 좋겠지 싶었다. 책을 읽고 깨달은 바 나는 그 친구에게 에세이를 빚졌다.

 

책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도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더욱 좋았다.


아름다울 것들

공연은 시간예술이다. 회화와 같은 공간예술과는 달리, 시간예술은 소멸한다.

아름다운 것은 소멸함으로써 진정 아름다워진다. 다시 말해 아름다운 것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시간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존재는 사라지고 존재의 파편만이 우리의 기억 속에 잔향처럼 아스라히 남을 때, 우리는 그 기억을 추억이라 부르고. 추억은 아름다운 것이다.

시간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인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주체의 생 자체가 유한하고, 너무도 짧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의 생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주체의 생 모두는 찰나의 시간이다. 그 두 찰나와 찰나, 생과 생이 서로를 스치는 그 순간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나와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는 기적적인 사실은 기실 당연한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시간에 종속되어 있지 않은 것은 없다. 시간과 공간을 서로 다른 두 축으로 보기도 하지만, 일반인이 느끼기엔 공간마저 시간에 종속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경험을 우리는 직접 해왔다.

모든 것은 시간에 종속되고, 따라서 모든 것의 생은 머지않아 종결되고 소멸되고, 심지어 나의 생 그 자체마저 그러한데. 나는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을, 그 찰나의 순간들을, 숨 쉬듯 그저 흘려보냈는가.

변명.

우리는 먼 미래를 인지하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바로 다음 순간의 미래도 인지하지 못한다. 뱀을 마주쳤을 때, 주의를 기울이고 길을 돌아가는 것은, 우리의 조상이 그렇게 했기 때문이지, 내가 뱀에 물려 죽는 미래를 인지했기 때문이 아니다. 미래를 인지한다는 환상은, 유전자와 뇌 속에 저장된 수많은 인과의 데이터들(더 과거 - 과거)의 쌍들을 가지고 있는, 현재의 나로부터 기인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미래는 없다.

그러한 까닭에, 존재의 생이 아직 나의 생을 지나고 있는 때에, 존재의 소멸은 우리의 인지 범위 밖에 있다. 그러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존재는 사라지고. 존재가 존재했던 그 흔적만이 존재할 때. 우리는 그제서야 인지한다. 아름다운 것이 있었노라고. 그것을 추억하노라고. 나는 그것을 사랑했노라고.

여전히 나의 곁에는 아름다울 것들 뿐이다.


글쓰기가 본디 온전할 수 없다면

"공연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은 가쁜 호흡으로 이루어진다. 흐릿해지기 전에. 영영 지워지기 전에. 그러나 아무리 현재적이어도 그 글쓰기는 공허를 면할 수 없다."(6p)

공연뿐일까. 기록은 결국 과거의 일을 적는 행동이다. 따라서 모든 기록은 기록한 사람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억은 공연과 마찬가지로 "그 존재 방식이 시간에 기대고 있어, 발생하는 동시에 소멸"(5p)한다.

나는 그래서 가능한 한 현재를 기록하려 했다. 생각이 떠오르면 그 즉시 기록해서 소멸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소멸은 필연적이다. 생각, 특히 기록할 수 있는 형태의 생각은 언어에 종속되어 있고, 우리의 언어는 시간에 대해 선형적이므로, 떠오른 모든 생각을 소멸 없이 기록하는 것은 시간이 흐르는 한 불가능하다.

그래서 작가는 수많은 공연들을 기꺼이 "기억의 무덤 속"(6p)에 묻었다. 글쓰기가 본디 온전할 수 없다면. 차라리 자신의 기억이 아득히 희미해져서 독자와 충분히 가까워졌을 때. 그제서야 글을 씀으로써, 독자가 책을 읽으며 느낄 작가와 독자 사이의 심연을 보다 옅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선택지도 있구나 싶었다. 기억의 사라짐에 너무 과한 겁을 먹었던 것 같다. 이 필연적인 소멸에 너무 마음 쓰지 말아야 한다.


문장들

뒤늦게 쓰인 비평

왜냐하면 공연예술은 시간예술이기 때문이다. 그 존재 방식이 시간에 기대고 있어, 발생하는 동시에 소멸하는 예술. (5p)
공연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은 가쁜 호흡으로 이루어진다. 흐릿해지기 전에. 영영 지워지기 전에. 그러나 아무리 현재적이어도 그 글쓰기는 공허를 면할 수 없다. (6p)
그리하여 그때, 유예의 시절에, 나는 나를 가슴 뛰게 한 많은 공연을 기꺼이 기억의 무덤 속으로 넘겨 보냈다. (6p)
어째서 어떤 슬픔은 발화됨으로써 해소되는지. 나는 그것이 늘 슬펐다. (7p)

 

공간에서

공간을 감각한다는 것은 그 공간 속에 존재하는 나를 잊지 않는 일이다. (13p)
특수로부터 빠져나와 다시 보편으로 돌아가고, 보편을 보는 사이 포착된 특수를 제때 주목할 수 있는. 일종의 유희를 원활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13p)
통상적으로 우리가 정신의 일이라 생각하는 많은 것들은 몸과 연관돼 있고, 몸의 일에 있어 단련이 불가한 지점은 퍽 드물다. (13-14p)
익힌 선율이 관람 중에 흘러나올 때, 허다한 음악 중 그 노래만이 돌연 귓가에 선명히 붙잡히는 것을 겪으면 즐거웠다. (14p)
소리는 나로부터 나와, 나를 떠나서, 공간 속으로 간다. 그랬다가, 그곳으로부터, 다시 영영 사라진다. (15p)
말하자면, 우리는 세계의 어떠함을, 우리들 몸으로부터 나온 잔향의 스러짐을 통해 알아볼 수 있는 것이었다. (16p)
먼 시절의 사람들. 그들이 거기, 그 공간 속에, 나보다 앞서 존재했었다. 그리고 소리처럼 사라졌었다. (16p)
생은 고통이고 죽음만이 안식일지라도, 생을 향해 걸어 나가는 일. (18p)
파리에서 ... 나는 그저 존재하는 일을 했다 하겠다. ... 세계를 전부 감각했으므로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몸을 마침내 연마했노라고. 그럼에도 거기 남아있는 얼굴을 한 번만 더 보고 싶었다고. (19p)

 

봄의 제전

물론 사랑과 고독은 호환되는 항목이 아니기에, ... 사랑받았다 해도, 그는 깊이 고독했을 것이다. (24p)
진통 없이, 희생 없이, 죽음 없이 봄은 오지 않는다는 믿음. 춤이 없이도 감히 그렇다고 믿었던 시원의 사람들. (26p)
우리는 실체가 있는 것만을 사랑할까. 혹여 본 적 없는 얼굴을 더욱 사랑할 수도 있는 걸까. ... 조립될 수 없는 파편들, 그럼에도 당신의 것인 조각들이 남아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까. 아니면 그것을 붙들고 우리는 울까. (28p)
그리하여 본적없이 사랑한 얼굴 앞에서, 그것이 진정 그 얼굴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백 년 만에 처음으로 울고 싶어졌다. (31p)
우리는 여전히, 어떤 생명들을 희생하여 봄의 비옥을 맞이하고 있다. ... 전설 속의 지목된 여성도, 저 많은 동물들도, 사랑했던 당신도, 나를 대신해, 나의 봄을 대가로 죽었음을 실감했다. (32p)

 

솔렌

훗날, 죽음 후에, 내가 놓쳐 보지 못한 공연들이 모여 사는 세계가 있어, 거기서 평생 그것들을 다시 볼 수 있기를. (36p)
리옹에 남은 이는 아무도 없다. 도시는 내게 빈집이 되었다. (42p)

 

관객학교

나는 어디에서도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 어째서 우리는 가장 사랑할 수 없는 시절에 이미 아낌없이 사랑을 해버렸던가. 기진한 내가 더 꾸려가고픈 일상의 풍경이 거기 없었다. 마음속에 풍경이 펼쳐지지 않았다. (45p)
어쩌면 극장에서뿐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도, 우리의 주체성은 관객의 주체성과 다르지 않다. (54-55p)
선생님께서 듣고 싶어 하실 만한 이야기를 제 안에서 한 톨도 길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저는 잘못했지요. 선생님께서 제게 듣고 싶어 하실 만한 이야기를 감히 속단했습니다. 저를 향한 경청의 깊이를 오해했습니다. 감히 외로운 척을 했습니다. 그것이 미안합니다. (65p)
사실 저는 공연을 보자마자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을 매우 싫어합니다. 발화의 형식 안에 한번 가둬버리면, 그 밤 저를 사로잡은 감각의 아득함이 처연히도 희미해지는 것을 느끼거든요. (66p)

 

비극의 기원

배우가 무대에 올라서면, 코러스는 그를 향해 노래했다. 그 장경을 에워싼, 거대한 객석이 있었다. 이 구도는 무엇을 연상시키나. 일찍이 신에게 제물로 바쳐진 동물. 그 제단을 둘러싸고 부르던 노래. 제사의 관습이 지워진 자리에서, 이제 동물 대신 희생되는 인간 배우. 우리 대신 고통받는 이를 바라보며 정화의 눈물을 흘리는 장소. 극장. ... 비극이라는 것이 동물의 실제적 죽음을 인간의 허구적 고통으로 대체함으로써 시작됐다면 이는 긍정적인 전환일 것이나. 그 이면에서 살상이 멈춘 것은 아니며. 도리어 무대에서 사라짐으로써 동물의 고통은 더 이상 가시화되지 않는 곳으로 밀려났다. (73p)
프랑스어로 유령은 revenant이며, 이를 직역하면 '다시 돌아오는 자'라는 뜻이다. 떠나간 이가 미처 영영 떠나지 못하고 또 다시 돌아오는 일. ... 예로부터 연극 무대는 이 같은 유령적 현존을 마주할 수 있는 기묘한 장소가 된다. 여타의 장르에서와 달리, 연극 속의 유령은 물리적인 육체의 덩어리를 숨기지 않는다. ... 햄릿의 비극은 유령 때문에 발생한 것은 아니다. 그 세계는 본디 비극이었다. 유령은 단지 그것을 알게 하는 자다. 그러기 위해서 아픔을 안고 돌아온. 돌이켜보면 많은 비극은 이처럼 귀환의 구조를 띠고 있다. 숨겨진 아픔이 들추어지고, 잊힌 진실이 폭로되는. 평이했던 나날이 꽃잎 하나의 무게로 무너지는. 세계의 신음이 비로소 들려오는. ... 당신이 돌아오는. (80p)

 

꽁띠뉴에

공연예술의 가장 큰 특징은 사라짐에 있다. (83p)
연극과 같은 시간예술은 시간에 깃들어 발생했다가 그 흐름과 더불어 종결된다. ... 더 이상 존재가 없으므로 점차 기억은 희미해진다. 그중 어떤 기억은 되바꿀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 몸에 기입된다. 그렇다 해도 흔적이 남는 것과 존재가 남는 것은 아득히도 다른 일이다. 시간예술의 근본에는 슬픔이 있다. (84p)
이토록 좋은 것을 잊을 수가 있을까. 그리고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았다. ... 그리고 머지않아 모든 것을 잊었다. 이토록 좋은 것을 잊을 수가 있을까, 생각하고 이내 고개 저었던 내 안의 순전함만을 기억할 뿐. (84p)
제 존재를 지우고 사라지는 것은 얼핏 모든 책임으로부터 홀연해보인다. 그러나 시간에 기대 한 공연이 흘러가버린 뒤에도, 세계는 세계의 아픔을 안고 남아 있다. 사라진 것이 새기고 떠난 흔적을 제 몸에 지닌 채로. 그러므로 남겨지는 세계에 대해, 공연은 예의를 지켜야 한다. (87p)
애초에 세계가 기울어지지 않았다면, ... 그때 우리는 어떤 연극을 필요로 하게 될까. ...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세계의 기울기는 자명하므로, 오늘의 연극은 오늘의 고민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92p)

 

테러와 극장

어떤 밑바닥까지 가보면 모든 진실은 모순적이게 마련이지 않던가. 우리는 그 모순적이고 혼탁한 것들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98p)
비극이란 관객보다 고귀한 인물의 고통을, 희극이란 그보다 저급한 인물의 고통을 다루는 것으로 규정된다. ... 사람은 어째서 늘 당연한 듯 거룩함 쪽에 이입하는가. (102p)
살아가는 동안 연마한 선함은 애초에 나의 것이 아니였더라도 내 얼굴을 온화한 늙음 쪽으로 데려갈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을 간직한 채 서로에게 지키는 예의가 세계를 성숙하게 한다는 것을. ... 때로는 얼굴을 가리는 그 선택이 역설적으로 가면 너머의 얼굴을 신뢰하게도 해주는 것을 말이다. (103-104p)

 

장 끌로드 아저씨

기실 누군가와 주고받은 첫 문장을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는 건 드문 일이다. (128p)
만나지 못하는 것을 만나지 못하는 것으로 두는 일에 너무 마음 아파하지 않는 법을 습득하는 것. 흘러가 사라지는 삶 속에서 어쩌면 모두에게 훈련되었을 그것. (134p)
그러나 두려워한다는 것은 아직 그 일을 만나지 않았음의 반증이므로. 감히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저 몸들 앞에서 또한 느끼며. ... 나의 얄팍한 공포 너머에서 그들은 실재한다는 것을 실감할 때. (143p)
누군가 '믿는 체 하려는 것'은 결국 그가 '믿고 싶은 것'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믿고 싶은가. ... 그것을 꿈꾸게 해주는 데 본디 예술의 임무가 놓여 있던 것은 아닌지. 애초에 그래서 인간은 허구를 필요로 했던 것이 아닌지. (146-147p)

 

춤을 나눠드립니다

말하자면 몸을 풀면서 우리는 제 몸 속에 기입될 또 다른 몸을 맞을 준비를 한다. 이것이 사랑이다. 당신의 몸에게 가까이 가기. 당신이 감각하는 대로 세계를 만나보기. 나의 몸을 가지고 당신의 고통 속으로 거주하러 들어가기. (155p)
아름답게 보이기보다 주어진 행위를 다 하는 데 몰두하기. 단지 그렇게 함으로써 언제나 아름다운 동물들처럼. (158p)
그때는 삶이 참 소박했다. ... 만나야 하는 사람, 지켜야 하는 도리, 거절해야 하는 부탁, 거절할 수 없는 임무가 내게 없었다. (158-159p)
나눈다는 말은 분배의 의미뿐 아니라 분할의 의미 또한 지닌다. ... 철학자 랑시에르는 이 세계의 많은 것, 특별히 감성적인 것이 그처럼 분할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160p)
관객이란 무언가를 나눠받는 존재이기에. 나눠받은 아름다움은 그의 몸과 가슴에 새겨져 영영 그만의 것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는바, 그 아름다움은 본디 그의 안에 있었다. (161p)
아이는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나를 이해하려고 그 질문을 했다. ... 어쩌면 그건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 (170p)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오직 저 말이 새로운 사실을 세상에 기입한다. 나의 발화와 더불어, 내 기타의 이름은 기타가 된다. ... 어떤 발화들은 세계를 변화시킨다. (178p)
언어를 통해 사유하는 대부분의 인간은 선형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대한다. 우리가 생각할 때, 머릿속에 문장이 줄지어 흘러간다. 우리가 살아갈 때, 눈앞에 세계가 지나간다. 그 가없는 흐름 속에서, 과거와 미래를 잇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현재라는 찰나 속에 우리는 산다. 일몰의 시간, 사라지는 빛이 물들이는 하늘을 보며 옆에 선 이에게 아름답지, 말하는 순간 그 아름다움은 이미 지나가고 없다. 그것이 우리의 언어가 우리에게 허락한 생의 방식이다. (179p)
헵타포드의 모든 언어는 수행문과 같다. 예컨대 어떤 대화가 진행될지 미리 알면서도 그들은 충실히 대화에 임한다. 그래야만 그 대화가 실제로 발생해 세계 속에 파문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 모든 것을 알아도 문장을 말하는 이유는 그 말의 발설 자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수행이 일어나기 전과 후의 두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 ... 많은 순간 우리는 수행적으로 살아간다. 우리가 발걸음을 내딛을 때나 눈을 마주칠 때마다 세계는 우리가 발걸음을 내딛고 눈을 마주친 세계로 변한다. ... 내가 반복해온 행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면, 앞으로 발생할 또 다른 행위가 나를 바꿀 것이다. 우리는 수행을 통해 새로운 주체가 되고, 어쩌면 세상을 조금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180-182p)
두꺼운 논문 사이에 편지를 끼웠다. 허나 너무 명백한 사랑 앞에서는 할 말을 잃기가 쉬우므로. 마음속으로 몇 편의 이야기를 썼다 지웠다. 끝내 고른 문장들도 카드에 옮기며 한 뭉치를 덜어냈다. 쓰고 보니 그 정도의 담담함이 가장 적절한 절절함 같았다. (184p)

더 알아보면 좋을 것들

오스틴, 수행적 발화

테드 창, 『네 인생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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