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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범주화에 대한 경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춘배0 2025. 12. 21. 16:07

책 정보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저
  • 정지인 역
  • 곰출판 (2021)

범주화에 대한 경고

철학에는 어떤 것들이 이름을 얻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상이 있다. ...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개념은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실재"가 된다. 우리는 전쟁, 휴전, 파산, 사랑, 순수, 죄책감을 선언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다. 이렇듯 아이디어를 상상의 영역에서 세상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운송 수단인 이름 자체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93p)

 

그런데 이름이 붙음으로써 존재한다는 게 정말 맞을까? 애초에 존재는 조용히 존재하고 있다. 그것에 이름을 붙이는 건 순전히 우리의 편리 때문이 아닌가? 특히 범주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여러 존재들에 같은 이름을 붙이는 건, 그 존재들 사이에 있는 아주 미묘한 차이들을 보이지 않는 저 너머로 보내버리는 일이다.

그렇다고 범주화가 주는 그 편리함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하나의 이름 아래 사라진 크고 작은 차이들이 있다는 걸 잊지 않는 일이다.

 

성별, 지역, 사상, 정치색, 인종, 기타등등 하나로 퉁쳐진 이름들이 너무 많다. 남과 여, 흑과 백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진 수많은 개개인의 차이에 시선을 둔다면 많은 갈등들이 사라지지 않을까?

 

나는 그 커튼들 너머, 우리가 자연 위에 그려놓은 선들 너머를 간절히 보고 싶었다. ... 다른 세계는 있지만, 그것은 이 세계 안에 있다. ... 나는 범주를 부수고 나왔다. 자연이 프린트된 커튼 뒤를 들춰보았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무한한 가능성의 장소를 보았다. 모든 범주는 상상의 산물이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느낌이었다. (257-262p)

 

과학은 "물고기"라는 커튼을 들춰 이 우주를 있는 그대로 바라 보게 해 주었다.

우리도 갈등을 야기하는 커튼 "남자", "여자", "좌파", "우파", "흑인", "백인" 들을 들춰 그 뒤에 숨어 있던 개별적인 존재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한다면, 더 근사한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록

오만

"이제 세계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다 알려진 것처럼 보였다."(25p)

19세기 중반의 생각이다.

 

수집

스트레스나 불안을 겪는 사람들이 수집에 의지해 고통을 달랠 수 있다. 새롭게 하나를 수집할 때마다 수집가에게는 폭발적 도취감이 흘러넘친다. 사람이 자신의 무력함을 느낄 때 강박적인 수집이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유일한 위험은 여느 강박과 마찬가지로 수집 습관이 "신나는" 일에서 "파멸적인" 일로 바뀌는 어떤 지점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31p)

 

아가시의 과학

"그는 모든 종 하나하나가 "신의 생각"이며, 그 "생각들"을 올바른 순서로 배열하는 분류학의 작업은 "창조주의 생각들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43p)

오늘날의 관점에서 아가시의 과학은 틀렸다. 우선 창조주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 틀렸다. 그리고 생물들에 위계가 있다고 믿었던 것이 틀렸다. 퇴화에 관한 개념도 '종이 자신의 위계보다 낮은 위계로 떨어지는 것'이라고 한 점에서 틀렸다. 예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직립"(44p)하는 우월한 인간도 "자신의 저열한 충동들에 저항하지 못하면"(45p) "물속에 엎드려"(44p) 있는 물고기의 위치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게 아가시의 생각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뿐 아니라 아가시의 바로 다음세대, 데이비드의 시대에서도 "과학사에서 가장 큰 혐오를 담고 있고 가장 파괴적인 오류 중 하나"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아가시의 과학은 전반적으로 과학과 도덕, 철학, 신학이 모두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다. 아가시의 연구 목적은 창조주의 의도를 깨닫는 것이었으므로, 연구실은 성소였다.

아가시의 과학은 시대적으로는 옳았다. 다윈의 진화론이 인정받기 전의 시대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아가시의 과학을 통해 유년기 자신의 분류적인 행동들이 시간을 낭비하는 쓸데없는 일이 아니었음을 느낀다. 신의 뜻을 알기 위한 신성한 행동을 그는 어릴 때부터 했었던 것이다.

 

신이 없는 막간극

신이 사라진 세계관 -저자가 살아온 시대- 의 얘기로 잠시 돌아와 본다.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의미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낸 것일 뿐이니까."

"넌 중요하지 않아...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

"그건 마치 이 세상을 덮고 있던, 깃털을 넣어 만든 커다란 이불을 빼앗긴 느낌이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시대와 저자의 시대는 그리 많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 백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과학

다윈은 "다른 종끼리는 번식능력이 있는 자손을 만들 수 없다는 가정도 헛소리라는 것을 알아냈다."(67p)

"루이 아가시는 죽는 날까지 요지부동으로 다윈의 생각에 반대했다."(68p)

아가시에게 다윈의 주장은 이단적이었을 뿐만아니라 분류학자로서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었다. 한 시원의 조상으로부터 모든 생명이 진화했다는 주장은 종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것이었다. 분류학자들이 평생을 바친 대상이 진리가 아니라, "움직이고 있는 혼돈의 모습을 담은 스냅사진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정신을 아득하게 하는 진화의 진실을 받아들이고 계속 전진할 길들 찾"(68p)았다. 이것이 과학이다.

 

이름

데이비드는 "80가지가 넘는 새로운 어류 종에 이름을 붙"(74p)이고, 결혼을 하고, 종신교수가 되고, 대학 학장이 되었다. "목적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았다."(76p)

"이 우주에서 아직은 미지의 한 조각에 불과한 새로운 물고기를 한 마리 한 마리 잡아나가고, 새로운 이름을 하나씩 붙일 때마다 믿을 수 없는 도취적인 감정이 몰려왔다. 혀에 닿는 그 달콤한 꿀, 전능함에 대한 환상, 그 사랑스러운 질서의 감각. 이름이란 얼마나 좋은 위안인가."(89p)

"철학에는 어떤 것들이 이름을 얻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상이 있다. ...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개념은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실재"가 된다. 우리는 전쟁, 휴전, 파산, 사랑, 순수, 죄책감을 선언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다. 이렇듯 아이디어를 상상의 영역에서 세상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운송 수단인 이름 자체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93p)

 

그러나 이름을 붙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의 정신이 세상을 조작해내는 일을 늘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니라는 것, 우리가 만물에 붙인 이름들은 잘못된 것들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노예"는 인간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자유를 누릴 가치도 없던 존재였던가? "마녀"는 화형을 당하는 게 마땅한 존재들이었나?"(94-95p)

"하지만 ... 아름답게 나부끼는 오렌지나무 잎들을 보다가 관념들이 바람에 날려 증발되는 것 같았다. 당연히 의자는 존재한다. ... 이 세계에는 실재인 것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도 실재인 것들이. ... 맞지? 맞겠지?"(95p)

물고기는 실재하는가?

 

참고로 표본은 완모식(holotype)과 신모식(neotype)으로 나눌 수 있다. 최초의 신성(holy)한 모식이 완모식이다. 완모식 표본이 소실되었을 때 그 종을 대표할 표본으로 선택된 더 낮은 지위의 모식이 신모식이다.

"과학자들조차 의례를 좋아한다."(96p)

 

실패

지진은 몇 천 마리의 물고기를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백 번, 천 번, 천 마리의 물고기가 사라졌다. 기억이 떠오르지 않은 천 번의 사소한 실패."(117p)

그러나 데이비드는 "망해버린 사명을 계속 밀고 나아가는 일"(120p)을 계속 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데이비드가 "그 모든 일의 허망함에 짓눌려 으스러지지 않기 위해 그는 정확히 어떤 말을 자신에게 들려주었을"(118p) 지, 저자는 반드시 알아내야만 했다.

"과학적 세계관이 골치 아픈 점은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할 때 그 세계관이 보여주는 것은 허망함뿐이라는 사실"126이다.

 

회복, 자기기만

벼락으로 인해 그가 모은 표본들과 평생의 연구 성과가 사라졌고, 아내가 폐렴으로 죽었을 때 데이비드는 "낙천성의 방패"(80p)로 재빨리 회복했다.

데이비드는 "자기 과신을 경계하는 사람"(126p)이었다. 그랬던 그도 자연의 혼돈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살아남는 것은 사람이고,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도 사람의 의지"(132p)라는 거짓말을 통해 나아갈 힘을 얻었다. "자연은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으니까! 그조차도 절망에 완전히 집어삼켜지지 않으려면 그 거짓말이 진실이기를 믿어야만 했던 것이다."(133p)

이 대목에서 생각해볼 만한 질문이 있다. 자기기만은 좋은 것인가?

보통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항상 양면적이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고대 그리스인부터해서 계몽주의 시대를 거쳐 프로이트, 매슬로, 에릭슨 같은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들까지 자기기만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20세기부터의 연구는 성공의 측면에서 자기기만을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기만'이라는 용어는 '긍정적 착각'이라는 중립적 표현으로 바뀌었다."(139p)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자기기만은 그릿(Grit)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어쩌면 진화가 우리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은 "우리는 실제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인지도 모른다."(141p)

"겸손을 유지하라는 수천 년 이어져온 경고는 잊어라. 어쩌면 이것이 신이 없는 세계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146p)

 

그러나 당연히 단점도 있다. 자기기만, 즉 긍정적 착각을 잘 하는, 다시 말해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사회적으로 손해를 본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또 "장밋빛 렌즈의 힘...이 떨어지면 자신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정말로 따끔하게 받아들여야 한다."(148p)

"가장 위험한 사람운 자신을 우월한 존재라고 보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다."(151p)

 

저자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직접 자신의 이름을 붙인 유일한 바닷물고기"(151p)를 떠올린다. "모서리가 없는 조던." 무슨 의미일까?

 

의심

제인 스탠퍼드는 미묘한 타이밍에 죽었다. 데이비드와의 갈등이 생긴 후 얼마 되지 않아 죽었고, 대부분의 의사와 현대의 수많은 증거들은 스트리크닌에 의한 독살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데이비드는 평생 그 죽음이 자연사라고 주장했다.

저자는 혼란스럽다.

"그에게는 내가 존경할 만한 많은 면들이 있었다. ... 그의 강철 같은 근성. 그 어떤 불운이 자기 앞에 닥쳐와도 주저앉기를 거부하던 그 투지 넘치는 결연함. 하지만 그 정도로 자기 확신을 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 결국에는 한 여자의 목숨까지 끊어버릴 수 있게, 아니면 최소한 그 죽음의 진실을 기꺼이 은폐할 수 있게 되는 것인가?"(171p)

"데이비드에 대한 의심이 점점 커져가고 있음에도 나는 그의 좋은 면을 발견하도록, 그 좋은 면에 귀를 기울이도록 나 자신에게 강요했다."(174p)

이 시점부터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한 텍스트의 온도가 달라진다.

 

우생학

데이비드는 열렬한 우생학 신봉자였다. "우생학은 1883년 유명한 박식가이자 찰스 다윈의 고종사톤인 프랜시스 골턴이라는 영국의 과학자가 만든 단어다."(181p) ≪종의 기원≫에 따라, "인간의 성격을 이루는 거의 모든 특징을 생물학적 유전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182p)이다. 데이비드는 "유전자 풀의 정화"(183p)를 위해, ""부적합"해 보이는 사람들의 생식기를 그냥 잘라내"(184p) 박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윈은 ≪종의 기원≫의 거의 모든 장에서 "변이"의 힘을 칭송한다"(188p). 골턴과 데이비드는 다윈의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실제로 이 강제적인 불임화법은 대법원의 판례로 남게 되어 ""공공복지"의 이름으로 6만 건 이상의 불임화가 합법적으로, 그리고 당사자의 의지를 거슬러 실시될 길을 닦아놓았다."(194p) 그리고 이러한 강제적 불임화는 2010년대까지도 자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가 겪은 일들을 읽으며 너무 안타까웠다. 어린 나이에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성인이 되어 강제적인 불임화 수술을 받고 나서야 수용소를 나와 사는 삶은 어떤 삶이었을지 감히 나는 생각할 수 없다.

 

"미국 과학의 사원인 국립과학아카데미로 들어가는 길목에 청동으로 새겨진 프랜시스 골턴이 있다. 스탠퍼드대학의 주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 흑인은 인간보다 낮은 종이라고 믿었던 루이 아가시가 여전히 코린트식 기둥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그의 등 뒤에는 ... 거대한 사암 건물이 있다. 그 건물에는 사회의 가장 취약한 집단을 "몰살"시킬 것을 촉구하며 전국을 누볐던 남자를 기리는 이름이 붙어 있다. 바로 "조던 홀"이다."(197p)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과학 2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아가시와 달리 "정신을 아득하게 하는 진화의 진실을 받아들이고 계속 전진할 길들 찾"(68p) 았다. 여기까진 과학이었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우생학에 관한 그 믿음을 끝까지 고수했다. 이 시점부터 그의 과학은 잘못된 길로 가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과학은 믿음을 싫어한다"(204p).

 

저자는 궁금하다. 왜 그랬을까?"아마도 그 믿음이 그에게 진실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206p)

자연에는 규칙 -자연의 사다리- 이 있고 분류를 통해 그것을 읽어내는 일은 인간을 사다리의 저 높은 곳으로 올려다줄 숭고한 일. 자연은 결코 혼돈이 아니라고 믿으며 "낙천성의 방패"(80p)로 여러 시련에서 회복한 그에게, 사다리가 없다는 다윈의 진실은 "커다간 이불을 빼앗긴 느낌"(55p)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제, 저자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서 답을 찾을 수 없다. 무엇에 기대 살아가야 할까?

 

저자는 우생학적 불임화의 피해자, 곧 데이비드의 피해자를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거기에서 답을 찾는다.

 

"넌 중요하지 않아"(57p)란 아버지의 말은, "가장 심한 비난의 말로 표현하자면, 비과학적이다."(228p)

우리는 중요하다. 우리를 바라보는 수많은 관점이 있다.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227p) 그러나 다른 누군가의 관점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우리는 중요하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는 평온하게 죽었고 그의 업적들은 과학사에 기록되었다.

정말 그는 평온했을까? 자연은 "그의 물고기 컬렉션을 단박에 허물어뜨"(235p)렸다. "자연은 그가 자기 손으로 직접 그 일을 하도록 만들었다."(235p)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분기학 연구에 따라 ""어류"가 견고한 진화적 범주라는 말은 실제로 완전히 헛소리라는 진실"(240p)이 밝혀졌다. 우리가 어류라고 부르는, "비늘로 된 의상"(240p)을 덮고 있는 것들은, 비유하자면 인간과 개구리와 독수리와 지렁이가 우연히 같은 환경에서 살아옴으로써 같은 옷을 입게 되었는데 단지 옷이 같다는 이유로 이들을 하나의 생물, '어류'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것과 같다.

이러한 사실,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연의 진실을 데이비드는 알았을 것이다. "이를테면 그는 대리석 같은 무늬의 폐어 껍질을 벗기고, 그 폐와 후두개와 여러 개의 심방과 심실로 이루어진 심장을 보고는 어류라는 범주가 자기 손가락 끝에서 해체되고 있는 걸 느꼈을 것이다."(245-246p)

 

그럼 물고기의 죽음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싶었던 의미는 애나(우생학의 피해자)의 의미였다. "애나는 그것이 "부적합"이라는 단어와 비슷한 게 아니냐고 물었다. ... 그렇다면 물고기에 대해 연민이 느껴진다고 했다. 일단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더 이상 그걸 제대로 바라보지 않게 된다는 사실에 대한 연민이었다."(250p)

이름이란 그런 것이다.

"드 발은 과학자들이 나머지 동물들과 인간 사이에 거리를 두기 위해 기술적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가장 큰 죄를 범하는 집단이라고 지적한다."(251p) 예를 들면, 인간은 인간의 우월성을 유지하기 위해 "까마귀와 침팬지의 도구는 인간의 도구 제작과 질적으로 다르다", "어떤 인지 과제에서 동물이 인간보다 우월하다면 그것은 지능이 아니라 본능이다"와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수많은 언어적 수법을 드 발은 "언어적 거세"라고 표현했다."(252p)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 세계에 관해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은 또 뭐가 있을까?"(263p) 자연은 혼돈이다. 그러나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263-264p)다.

안다는 착각은 여러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264p)이 필요하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진리가 있다는, 그리고 우리가 그 진리를 알고 있다는 잘못된 "허구를 쪼개버릴 물고기 모양의 대형 망치다."(268p)

 

과학은 늘 잠정적이며 인정받는 가설은 증거가 가장 많은 무언가이다. 과학마저 진리를 알지 못한다.


문장들

미적 관심과 구별되는 과학적 관심을 보여주는 특별한 증거는 숨어 있는 보잘것 없는 것들에게 마음을 쓰는 일이다. (28p)

 

유일한 위험은 여느 강박과 마찬가지로 수집 습관이 "신나는" 일에서 "파멸적인" 일로 바뀌는 어떤 지점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31p)

 

그는 모든 종 하나하나가 "신의 생각"이며, 그 "생각들"을 올바른 순서로 배열하눈 분류학의 작업은 "창조주의 생각들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41p)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54p)
의미는 없어! ...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 낸 것일 뿐이니까. (54p)
그건 마치 이 세상을 덮고 있던, 깃털을 넣어 만든 커다란 이불을 빼앗긴 느낌이었다. (55p)
넌 중요하지 않아...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 (57p)

 

이 우주에서 아직은 미지의 한 조각에 불과한 새로운 물고기를 한 마리 한 마리 잡아나가고, 새로운 이름을 하나씩 붙일 때마다 믿을 수 없는 도취적인 감정이 몰려왔다. 혀에 닿는 그 달콤한 꿀, 전능함에 대한 환상, 그 사랑스러운 질서의 감각. 이름이란 얼마나 좋은 위안인가. (89p)
철학에는 어떤 것들이 이름을 얻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상이 있다. ...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개념은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실재"가 된다. 우리는 전쟁, 휴전, 파산, 사랑, 순수, 죄책감을 선언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다. 이렇듯 아이디어를 상상의 영역에서 세상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운송 수단인 이름 자체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93p)

 

인간의 정신이 세상을 조작해내는 일을 늘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니라는 것, 우리가 만물에 붙인 이름들은 잘못된 것들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노예"는 인간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자유를 누릴 가치도 없던 존재였던가? "마녀"는 화형을 당하는 게 마땅한 존재들이었나? (94-95p)
하지만 ... 아름답게 나부끼는 오렌지나무 잎들을 보다가 관념들이 바람에 날려 증발되는 것 같았다. 당연히 의자는 존재한다. ... 이 세계에는 실재인 것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도 실재인 것들이. ... 맞지? 맞겠지? (95p)

 

백 번, 천 번, 천 마리의 물고기가 사라졌다. 기억이 떠오르지 않은 천 번의 사소한 실패. (117p)

 

과학적 세계관이 골치 아픈 점은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할 때 그 세계관이 보여주는 것은 허망함뿐이라는 사실 (126p)

 

결국 살아남는 것은 사람이고,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도 사람의 의지 (132p)
자연은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으니까! 그조차도 절망에 완전히 집어삼켜지지 않으려면 그 거짓말이 진실이기를 믿어야만 했던 것이다. (133p)

 

어쩌면 진화가 우리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은 "우리는 실제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141p)

 

겸손을 유지하라는 수천 년 이어져온 경고는 잊어라. 어쩌면 이것이 신이 없는 세계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146p)

 

장밋빛 렌즈의 힘...이 떨어지면 자신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정말로 따끔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148p)

 

가장 위험한 사람운 자신을 우월한 존재라고 보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다. (151p)

 

데이비드에 대한 의심이 점점 커져가고 있음에도 나는 그의 좋은 면을 발견하도록, 그 좋은 면에 귀를 기울이도록 나 자신에게 강요했다. (174p)

 

다윈은 ≪종의 기원≫의 거의 모든 장에서 "변이"의 힘을 칭송한다 (188p)

 

일반적으로 과학은 믿음을 싫어한다 (204p)

 

아마도 그 믿음이 그에게 진실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206p)

 

그는 대리석 같은 무늬의 폐어 껍질을 벗기고, 그 폐와 후두개와 여러 개의 심방과 심실로 이루어진 심장을 보고는 어류라는 범주가 자기 손가락 끝에서 해체되고 있는 걸 느꼈을 것이다. (245-246p)

 

애나는 그것이 "부적합"이라는 단어와 비슷한 게 아니냐고 물었다. ... 그렇다면 물고기에 대해 연민이 느껴진다고 했다. 일단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더 이상 그걸 제대로 바라보지 않게 된다는 사실에 대한 연민이었다. (250p)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252p)

 

다른 세계는 있지만, 그것은 이 세계 안에 있다. (257p)

 

이건 내가 그려왔던 인생이 아니었다. ... 그러나 이건 내가 원하는 인생이다. 나는 범주를 부수고 나왔다. 자연이 프린트된 커튼 뒤를 들춰보았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무한한 가능성의 장소를 보았다. 모든 범주는 상상의 산물이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느낌이었다. (262p)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 (263-264p)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 (2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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