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하는 춘배
[독서] 법률가의 생각; 『호의에 대하여』 본문
책 정보
- 『호의에 대하여』
- 문형배 저
- 김영사 (2025)
1. 독서에 관하여
나는 문형배라는 사람을 모른다. 따로 찾아보지도 않아 어떤 사람인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가 좋은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헌법재판관이라는 법률가로서 오를 수 있는 상당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 책을 읽으며, 한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사람의 생각을 듣는 것은 상당히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느꼈다. 법과 관련한 내용이나, 글쓰기에 관한 것이나, 삶과 일상에 관한 관점과 태도나.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았다.
저자의 말대로, 책은 "앞서간 사람의 생각을 알고 그들의 생각과 내 생각을 서로 맞추어보는 과정을 통해 생각이 단단해져 소신을 갖출 수"(110p) 있게 하는 데 기여한다. 실제로 만나기 어려운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성사시켜 준다는 점에서 독서의 가치를 다시금 느꼈다.
2. 글쓰기에 관하여
- 제안하는 글에서, 자신의 주장을 맨 앞에 배치해 언급하고 기존 방식의 문제점을 제안한 후 대안을 제시하는 순으로 글을 전개한다. 각각의 소주장에 대해서도, 주장을 확실하게 먼저 하고 근거를 제시한다. - 342p, <형사사건 재배당과 양형 기준제>
- 내가 잘 알고 있는 내용이더라도 핵심 개념에 대한 정의와 설명을 먼저 하고 주장을 펼친다. - 347p, <공판 중심주의와 그 적들>
- 연설에서, '제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A입니다. (부연설명). 둘째, B입니다. (부연설명).'의 구성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 370p, <진주지원장 취임사>
- 연설의 핵심적인 대목에서 '여러분!'과 같이 청중을 호출하는 방식도 주의를 환기하고 청중을 집중시키는 데 유효하다. - 393p,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 말씀>
3. 법과 사회에 관하여
내가 법은 잘 모르지만 법률가가 쓴 글을 읽고 나서 나름대로의 생각을 얕게나마 해 보았다.
형벌은 악으로 인한 많은 결과를 저지하지만 악 자체를 제거하지는 못한다. (242p)
"없이 사는 사람들의 부정은 흔히 그 외형이 파렴치하고 거칠게 마련이지만 그것은 마치 맨손으로 일하는 사람의 손마디가 거친 까닭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 없이 사는 사람들의 거친 범죄에 분노하는 자신을 성찰하는 밤이다. 맨손으로 일하는 그들의 거친 손마디에도 주의를 돌려야 하지 않을까? (234p)
범죄의 결과만 보고 형을 정하는 것을 넘어서 범죄의 원인을 찾아 그 원인을 치유할 방법은 없을까? (353p)
재판이라는 것이 결국 피고인을 설득하는 절차라는 것 (358p)
착한 사람부터 법을 알자
법은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어야 한다. 법이 나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국민들이 받도록 해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착한 사람부터 법을 알자"(20p)는 말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국가는 법을 통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있지만, 정작 개인이 법을 모른다면 자신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 또는 권리를 온전히 보호받지 못하거나, 법을 잘 아는 '나쁜' 사람에게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법과 사회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지점
은행을 턴 범죄에 대하여 벌금 100만원만이 부과되고 향후 삶에서 받는 사회적, 경제적 불이익이 없다는 게 보장된다면 어떨까?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모두 은행을 털러 갈 것이다. 죄를 저지르고 얻는 편익이 그에 따른 처벌에 비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형벌은 어느 정도의 범죄 예방 효과가 있겠다.
그러나 형벌이 범죄 자체가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일어난 범죄에 대해 판결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범죄를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범죄를 저지를 이유가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인간 본성을 사회가 통제할 수는 없으므로 우발적 범죄는 막을 수 없다. 그러나 도저히 못 살겠어서 저지르는 생계형 범죄, 나의 억울한 마음을 타인과 사회가 들어주지 않아 울컥한 마음에 저지르는 범죄, 법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당사자간 원한이 쌓여 발생하는 범죄들은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가 마땅히 해야 하는 역할이 아닐까?
문장들
일상은 소중하다
구하라, 그러면 언젠가는 누군가는 거두리라. (15p)
우호적으로 변화된 상황에서는 인사와 관련하여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행동을 더욱더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26p)
무엇이 협상을 좌우하는가: 힘, 시간, 정보 (33p)
선고 전날 아파트 단지 내 공원을 산책한다. 내일의 판결을 머리로 그려보고, 결론에 자신 있는지를 검증한다. (47p)
평균적인 게 우리 사회의 성장 발전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가장 낮은 부분이 우리나라의 성장 발전을 결정한다. (49p)
기다리는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더디고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빠르고
슬픈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길고
기쁜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짧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60p)
일상의 행복을 일상의 사람이 느끼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일상의 평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예컨대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송사에 휘말려 고민하는 사람들은 일상의 행복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임을 깨닫는다. ... 아! 인생이란 실수를 몇 번 되풀이하고 후회를 얼마나 더 하고서야 제대로 살 수 있는 것일까? (76-77p)
우리 사회의 개혁이 지지부진한 이유가 개혁을 반대해서라기보다는 과도기의 손실을 누가 감수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과도기의 손실을 부담하겠다고 나서는 집단, 개인이 필요하다. ... 결론적으로 역사의 진보를 믿는 자가 이를 감수해야 한다고 본다. 역사의 진보를 믿는다는 것은, 변화해야 하며 그 변화가 내일은 될 거라고 믿는 사람이므로 오늘 당장 보상받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조삼모사란 간사한 꾀로 남을 속이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 심리에 기초한 문제 해결 방안일지도 모른다. (83-84p)
루소의 견해에 따르면 작은 국가가 더욱 바람직하다. 규모가 작은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더 수월하게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세상을 추구할 수는 없을까? ... 주민들이 모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대표성을 인정받은 사람이 구의원도 되고 시의원도 되고, 그 연장선상에서 국회의원이 될 수는 없을까? 국가에서 시작되어 도(특별시, 광역시)에서 시군구를 거쳐 주민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아니라, 주민에서 시작되어 시군구에서 도(특별시, 광역시)를 거쳐 국가로 이어지는 구조가 될 수는 없을까? (89p)
세월의 부피가 아니라 세월의 무게가 중요하다. 그러니 나이의 적고 많음에 얽매이지 말고 세월의 무게를 체화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경험하여라. ... 세상 물정에 밝으면서도 열정과 도덕성을 그대로 간직하며 나이를 먹을 수는 없을까? (106p)
사투리는 말을 안 하는 것으로 감출 수 있었지만 무지는 감출 방법이 없었다. (108p)
내 경험이 너무 좁고 얕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 그래서 생각해 본 것이 두 가지다. ...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기로 결심했다. ... 두 번째가 책을 읽는 것이었다. (109p)
"Yes, But"이 "Not, Because"보다 낫다. (123p)
과거의 일이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사람들이 기억할 때 그것은 역사가 된다. (129p)
사고로 죽건 자살로 죽건 인간은 소멸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이 나에게 삶을 주었으므로 내 삶의 의미를 세상에 돌려주는 게 마땅할지도 모른다. (130-131p)
아! 며칠 쉬었으니 다시 시작해야지···. 여행이란 돌아갈 집이 있을 때 진정한 여행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방랑이겠지. (139p)
나의 행복이 남의 불행에 관계한다면 나는 기다릴 것이다, 그가 행복할 때까지. 나의 행복이 남의 행복과 무관하다면 나는 기다릴 것이다, 우리가 연결될 때까지. 나의 행복이 남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면 나는 맘껏 누릴 것이다. (143p)
모든 문제는 나에게서 비롯되므로 그 해결 역시 내 마음을 바로잡는 데 있다. (149p)
지역화가 곧 세계화로 가는 길이 아닐까... 감동이나 아름다움은 인간에게 공유되기 마련이므로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통하지 않았을까? (172p)
돌이켜보면 위기일 때 원칙이 필요하였고 그렇게 세운 원칙이야말로 삶의 동력이 되었다. (177p)
범죄 예방 효과 중 특별 예방 효과는, 사형제나 종신형이나 당해 피고인이 재범을 저지를 수 없다는 점에서 동일하고, 다만 집행 비용이 싸냐 비싸냐 차이만 있을 뿐이다. 다음으로 일반 예방 효과는, ... 미국이나 중국이 재범 내지 재소자 비율이 매우 높은 반면, 사형제가 오래전에 폐지된 유로 회원국들이 재범 내지 재소자 비율이 낮다는 점에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181-182p)
때로는 권력이 못하는 일도 자본이 해내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추구하면서 끊임없이 자본으로부터도 독립되어 있는지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209-210p)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데 기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민주주의를 누린다. 왜냐하면 그것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212p)
나는 경험했다, 자신의 억울한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큰 고통이라는 것을, 공무원이 내 말을 믿어주지 않을 때 매우 답답하고 때로는 화가 난다는 것을. ... 3주가 지난 지금 나는 나에게 묻는다. 나는 남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가? (223p)
"우정은 반드시 잔을 부딪힐 필요가 없다. 우정은 의가 좋을 필요도 없다" 우정은 우리가 서로 영원히 잊지 않는 것이다. ... 우정이 사회 내로 들어가면 농도는 옅어지겠지만 박애가 되는 게 아닐까? 박애를 바탕으로 이 사회를 재구성하는 방법은 없는 걸까? (226p)
일독을 권한다
이성의 원리에 입각할 때 우리는 신이 있다고도 또 신이 없다고도 확인할 수 없으며, 이 점에서 유신론자와 무신론자는 피장파장이다. (247p)
≪에밀≫은 루소의 교육론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학이다. 아이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는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인가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265p)
만족을 얻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욕망을 줄이는 방법과 욕망을 충족하는 기회를 늘리는 방법이다. 전자는 안정적이나 현실에 취약하다. 후자는 강하나 불안하다. 인생은 어쩌면 전자와 후자 사이를 헤매는 건지도 모른다. (297p)
행복한 가정엔 결혼, 사랑, 믿음, 적당한 질투, 행운, 적당한 재산이 있었다. 불행한 가정엔 그 중 적어도 한 가지가 없었다. (282p)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307p)
사회에 바란다
저의 위치는 여러분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니고 여러분 사이입니다. 여러분을 연결하고 싶습니다. 저를 소통의 도구로 사용해 주십시오. (372p)
지금은 헤어지지만 여러분이 법원에 들어올 때 품었던 그 뜻을 펼치시는 길에서 우리는 만날 것입니다. (378p)
"어떠한 사람도 수단이나 목적이 될 수 없다. 바로 거기에 인간적 존엄성이 존재한다"라는 칸트의 말은 부산 가정법원을 운영하는 저의 좌우명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상대방은 사건 당사자나 민원인이기 이전에 존엄한 인간이라는 점이 우리의 신념이 되어야 합니다. (383p)
대화는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는 과정과 경청 후 자신의 의견을 수정하는 성찰의 과정이 포함됩니다. (403p)
읽어봄직한 책
- ≪법의 정신≫, 몽테스키외
-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 ≪칼의 노래≫,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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