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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멈춤과 움직임, 재난의 상품화; 『므레모사』

춘배0 2025. 8. 12. 11:47

책 정보

  • 『므레모사』
  • 김초엽 저
  • 현대문학
  • 2022

전반적 감상 (결말 포함)

조금은 미스테리한 분위기의 소설이다. 추측으로 가득 찬 불확실한 비극의 땅 므레모사. 소문만 무성하던 그 곳에 처음으로 간 사람들. 불확실함은 두려움을 낳는다. 그래서 읽는 내내 나도 불안했다. 분명 수상쩍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 감이 오지 않았다.

유안이나 레오나 모두 한결같은 인물이다. 평면적이다. 유안은 처음부터 멈추기를 원했다. 레오는 처음부터 므레모사의 진실을 알아내기를 원했다. 그러나 세상은 유안이 멈추게 두지 않았다. 그리고 유안 중심의 서술은 레오를 수상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속았다. 유안과 레오가 함께 탈출해서 므레모사의 진실을 세계에 알리는 결말을 상상했고 그런 결말을 원했다.
그러나 유안은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준 레오를 죽이고 거기 멈춘다. 므레모사의 귀환자들이 도움의 손길을 배신하고 그들을 좀비로 만들어 부려먹듯이.
둘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인물이었고 따라서 둘의 결말은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 끊지 않으면 므레모사의 비극은 계속될 것이다. 최초의 비극은 화재라는 사고였고, 그 피해자였던 귀환자들이 다음 비극을 만들었다. 비극은 상품화 되었고, 또 다음 비극을 낳았다. 진실을 밝히고 비극을 끊을 수 있었던 현재의 유일한 희망은 결국 실패했고 비극은 계속될 것이다. 어쩌면 사라진 유안을 찾으러 한나가 올 지도 모른다. 어쩌면 한나도 레오와 같은 최후를 맞고 비극은 반복될 지도 모른다.

아무튼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유안과 한나, 멈춘 삶과 움직이는 삶

살아 있는 건, 곧 움직이는 거야. 왜 '생동한다'는 표현을 쓰겠어? (90p)
고정된 것은 나를 편안하게 한다. 정적인 세계는 내가 돌아가야 할 고향이다 (91p)

한나의 말은 틀렸다. '생동(生動)한다'는 표현은 살아 움직인다는 뜻이지 살아 있는 건 움직인다는 뜻이 아니다. 유안을 설득하기 위한 근거를 조금 잘못 고르긴 했지만, 아무튼 한나에게 살아 있는 건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유안은 멈추지 말라는 한나의 조언을 일단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러나 심한 통증을 겪고 난 새벽이면 유안은 멈추고 싶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나는 도약하는 나를 사랑했고 나는 도약을 멈추고 싶었으므로 우리의 끝은 정해져 있었다. (172p)
한나, 제발 나에게 멈추라고 말해줘. 하지만 한나는 이곳에 오지 않았고 관객석은 텅 비어 있다. (14p)

한나는 끝내 유안이 멈추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채로 유안을 떠났다.

제발, 죽지는 마. 살아 있어. 어딘가에 살아 있으란 말야. (172p)
내가 바라는 건 죽음이 아니었다. 나는 삶을 원했다. 누구보다도 삶을 갈망했다. 단지 다른 방식의 삶을 원할 뿐이었다. (175p)

떠나가는 한나는 유안이 살아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유안도 삶을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유안이 바란 삶은 한나가 생각하는 삶과는 다른 것이었다.

유안은 한나가 비로소 자신을 이해한 줄 알고 '그 손'을 잡는다. 그러나 '그 손'은 허상이었고, 유안의 옆에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레오만이 있을 뿐이다.
유안은 레오를 떠나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 있는 것들"(174p)에게 말한다.

당신들처럼 되고 싶어요. 부디 나를 받아주세요. (183p)

재난의 상품화

- 작품해설(김은주)를 읽고...

재난은 예술의 가장 오래된 주제 중 하나이다. 칸트에 따르면, 재난과 같이 우리를 무력하게 만드는 대상이, 우리를 실제로 위협할 수 없을 만큼 충분히 떨어져 있다면, 그 대상이 두려울수록 더욱더 우리의 마음을 끈다. 그러면 우리는 그 대상으로부터 미적인 쾌를 느낄 수 있고, 그 대상을 '숭고'하다고 부른다. 따라서 우리는 타인이 겪는 재난으로부터 미적인 쾌를 느낀다.

타인의 재난으로부터 미적 끌림을 느끼는 우리가 잘못되었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이는 인간이라면 보편적으로 가지는 본능일 지도 모른다.
다만, 이 본능을 이용해서 재난을 상품화하고 이를 한낱 자극적인 볼거리로 소비하는 오늘날의 세태가 윤리적으로 옳은 것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폭우, 산불, 태풍 등의 기상재해, 폭격과 전쟁, 질병, 사고, 테러 등 수없이 많은 재난들을 우리는 뉴스나 SNS에서 쉽게 접한다. 때로는 우리의 가까운 곳에서, 때로는 우리와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이 재난들을 우리는 소비한다. 별 생각 없이 보고, 하트를 누르고, 댓글을 남기고 공유한다.
그러나 한번쯤은 생각해봐야한다. 이 재난은 누군가에겐 끔찍한 현실이고 현재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삶을 처참하게 무너뜨린 이 재난이 언제 우리에게 닥쳐올 지 모른다. 기후위기와 전쟁, 질병, 테러는 우리와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는 재난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안전하다는 착각 속에서 이 '숭고한' 재난 상품을 소비하고 있다. 우리는 므레모사의 비극을 소비하러 온 여행자들이 그대로 비극의 희생자가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재난들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만으로 그쳐선 안 된다. 재난으로 인해 끔찍한 현재를 살아가고 있을 이웃에게 공감과 연대를 보낼 줄 알아야 한다. 이 재난은 타인의 것이 아닌, 나와 우리의 현실이자 현재이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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