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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언어와 사상, 기억과 과거에 관하여; 『1984』

춘배0 2025. 8. 3. 20:06

책 정보

  • 『1984』
  • 조지 오웰 저
  • 정회성 역
  • 민음사
  • 2007

도입

병원에 입원해서 한창 좀 심란하고 우울할 때 읽었다. 우울할 때 읽으면 더 우울해질 만한 내용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여러 이유로 이 책을 골라 읽게 됐다.
우선 소설을 읽고 싶었다. 최근 비문학 쪽 책을 위주로 좀 읽기도 했고, 비문학 책을 읽으면 알게 된 내용들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을 해야 하는 어떤 강박이 생겨 버렸다. 그래서 좀 편안한 마음으로, 어떻게 보면 '뇌를 빼고' 읽어도 되는 소설류를 원했다.
그렇다고 요즘 인스타 광고 등에 자주 나오는, 화려하고 감성적인데 템플릿이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뭔가 비슷비슷한 표지로 나오는 그런 책들을 읽고 싶진 않았다. 이건 원래부터 좀 반감이 있었다. 근데 또 한 번 읽어보면 재밌다고 계속 찾아 읽을지도..?
아무튼 깔끔한 표지 디자인의 『1984』는 분량도 적절했다. 입원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을 거라고 예상(+바람)했던 때라 너무 긴 책은 배제했다.
결정적으로 좀 익숙한 이름의 책을 읽고 싶었다. 제목도 유명하고 내용도 어느 정도는 아는데 정작 실제로 읽어보지는 않았던 책이 많다. 『1984』도 그중 하나였다.
암울한 분위기의 소설은 맞았지만 결과적으로 뇌를 식히면서 읽는 데 성공했고, 입원 초 잠이 잘 오지 않던 시기 생각할 거리가 된 책이어서 잘 읽었다고 생각한다.


언어

언어는 사상을 지배한다. 그럴 수 있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우선 일반적인 성인의 모든 생각은 언어적으로 이루어진다. 가장 쉬운 예시는, 한국인은 한국어로 생각하고 영국인은 영어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생각을 영어로 하는 한국인은 없다.
더 중요한 이유는, 어떤 사람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언어적인 매개를 통해야 한다. 생각 자체는 언어적일 수도 있고, 이미지나 청각, 촉각 등의 비언어적인 감각적 심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비언어적인 생각도 타인에게 전달되거나 기록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언어적 요소로의 변환이 필요하다. 현시점의 기술로는 그렇다.

다시 말해, 생각의 전파는 반드시 언어적이다.
그러므로 여러 인간이 공유해야 하는 사상의 한계는 가용한 언어 수준 이상으로 높아질 수 없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모른다면 행복할 수 없다. 설사 우연한 계기로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꼈거나 '행복'에 관한 통찰을 얻었더라도, 행복이라는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그 '행복'은 너무나 개인적이고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이라서 타인에게 자신이 느꼈던 '그' 감정을 온전히 전달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걸 역으로 활용한 것이 『1984』에 나오는 신어이다. 가용한 언어의 풀 자체를 정부 차원에서 축소시켜서 반정부적인 위험한 사상을 전파하거나 떠올리는 것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기억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1984』에서 모든 과거는 현재에 맞도록 수정된다. 전지전능한 빅브라더의 예언은 항상 들어맞으며 정책은 항상 성공적이다. 지금 오세아니아와 전쟁을 하고 있는 적은 과거부터 늘 적이었다.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은 현재에도 없고 과거에도 없었다. 이는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기록 조작과, 개인 차원의 이중사고를 통해 달성된다. 이중사고는 두 가지 모순되는 신념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이다. 이를 극단적으로 훈련하면 필요할 때 필요한 신념을 꺼내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기록을 조작하는 건 비교적 어렵지 않다. 그러나 내가 잘 이해되지 않았던 것은 어떻게 개인의 이중사고가 그토록 완벽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당장 어제까지 함께 일했던 동료가 순식간에 증발해 버려 무인(無人), 현재에도 과거에도 없었던 사람이 되어버렸는데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까?
이 역시 답은 언어라고 생각한다. 사실 모두는 실제로 자신이 겪은 과거(진실)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를 입 밖으로 내놓지 않는다. 나만이 기억하는 과거는 진실일 수 없다. 모두가 조작된 과거를 진실로 인정하고, 모든 역사적 자료와 기록이 그 조작된 과거를 뒷받침한다. 종국에는 내 기억 속에서도 조작된 과거가 진실로써 기억되게 된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진실은 금방 사라지고, 새로운 진실과 그 증거들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인간의 기억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며 어렵지 않게 생성, 수정, 삭제된다.

과거의 기록을 교정하는 일을 했던 윈스턴은 빅 브라더를 증오했다. 그리고 그는 당이 자신의 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믿었었다. 그러나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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