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하는 춘배
[독서] 자유와 책임과 행복, 소설의 묘사, 산문 작가의 4가지 동기, 풍자와 우화, 조지 오웰의 사회주의; 『동물농장』 본문
책 정보
- 『동물농장』
- 조지 오웰 저
- 도정일 역
- 민음사 (2025)
기록
1
기억의 조작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1984와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
동물들은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존스라든가 존스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모든 것들은 이미 동물들의 기억에서 거의 대부분 잊히고 없었다. 그들은 지금의 삶이 고단하고 힘들다는 것, 자주 춥고 배고프다는 것, 잠자는 시간을 빼면 하루 종일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날 존스 시절에는 사정이 훨씬 더 나빴던 것임에 틀림없다고 동물들은 생각했다. 그들은 즐거이 그렇게 믿었다. (108p)
2
우매한 대중은 생각 자체를 하지 않거나, 무언가 잘못되었다 생각하지만 마땅히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하거나, 주변에서 '큰 목소리'로 들리는 선전에 입을 다물거나, 자신의 생각이 틀렸고 저 권력자와 언론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칭찬과 포상과 훈장에 쉽게 마음을 빼앗기고 언론의 통계와 달변에 쉽게 넘어간다. 이것은 공포 또는 세뇌의 결과일 수도 있으므로 대중의 잘못이라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대중이 이렇게 변한 이상 사회는 정상화될 수 없다.
3 자유와 책임과 행복
이 단일국의 지도 원리는 "자유와 행복은 양립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은 '행복'했지만 어리석게도 '자유'를 요구했다가 황야로 쫓겨나지 않았던가? 이제 단일국은 인간의 자유를 제거함으로써 행복을 되찾아 준 것이다. (138p - <자유와 행복>)
이 논리에 분명 허점이 있다. 오웰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차치하고, 생각해 볼 만한 거리가 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고 그 책임은 고통스러운 것일 수 있다. 자유가 없으나 평안한 삶과, 자유가 있어 고통스러운 삶 중 무엇이 나은가?
전자는 이를테면 군생활이라 볼 수 있겠다. 이때 평안하다는 건 몸이 평안하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라 불안하다의 반대 의미로써 사용한 말이다. 나의 모든 생활, 해야 할 일, 먹을 음식, 입을 옷 모두를 군이 통제하므로 자유가 없고, 동시에 내가 직접 생각할 필요가 없으므로 사회에 있을 때보다 평안하다. 통제받은 대로만 하면 내가 책임질 일은 생기지 않는다.
후자는 주변인의 개입이 전혀 없는 20대의 삶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알바를 해서 당장 쓸 돈을 벌어도 되고, 공부를 해서 미래에 투자할 수도 있고, 여행을 실컷 다니거나 취미생활에 집중해서 지금의 나를 즐겁게 만들 수도 있다. 선택은 자유이나 그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나(여기선 미래의 나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겠다)의 것이다. 그래서 불안하다. 이 선택이 나를 파멸로 이끌진 않을까.
둘 중 무엇이 낫느냐는 논의는 실제로 삶을 살아감에 있어 그다지 건설적인 논의가 아니다. 전자가 더 좋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나의 모든 것을 줄 테니 나를 책임져주세요'라고 할 수 없는 일이고, 후자가 더 좋다고 해서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자유와 행복은 양립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은 너무 극단적이어서 사실상 틀렸다고 볼 수 있는 문장이지만, 이를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라고 바꾸면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만한 문장이 된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행복의 기원>, 서은국). 행복하려면 긍정적인 기분을 자주 느껴야 한다. 이왕이면 좋게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는 행복할 것이다. 살다 보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치여 '자유가 없는' 때도 있고, 모든 책임을 온전히 내가 져야 하는 '자유로운 선택'의 순간도 온다. 두 경우 모두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지만, 이럴 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을 한번 떠올리면 힘든 시기를 그나마 좋게 좋게 넘길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통제를, 그리고 자유를 견디는 능력이 생길 거라 생각한다.
4 소설의 묘사
꼬마 시절 나는 내가 이를테면 로빈 후드라 생각했고 신나는 모험담의 주인공 자리에 나를 앉혀 보곤 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이런 '이야기'는 얼마 안 가서 불쑥 나르시시즘을 잃었고, 대신 내가 한 일이나 눈으로 본 것을 열심히 '묘사'해 보는 일에 점점 더 열중하게 되었다. ... 이런 묘사를 위해 나는 정확한 어휘들을 찾아야 했고 실제로 찾아보기도 했지만, 당시 나는 스스로 좋아서라기보다는 외부로부터의 어떤 충동 때문에 그런 묘사 작업을 했던 것 같다. (145-146p)
1984와 동물농장을 읽으며 굉장히 디테일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소설은 한줄 한 줄이 디테일해야 하는 것 같다. 결국 모든 이미지는 독자의 상상 속에서 구현되는데, 작가가 의도한 대로 독자가 상상하기 위해서는 묘사가 아주 디테일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독자가 떠올린 이미지는 작가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도 구체적인 묘사는 작가의 의도와 일치하는지와는 무관하게, 독자가 상상하는 이미지의 선명도를 높여줌으로써 소설의 재미를 높여주는 것은 틀림없다.
그날 밤, 매너 농장의 존스 씨는 잠자리에 들기 전 닭장 문을 걸어 잠그기까진 했으나 술에 너무 취해 닭장의 작은 구멍을 닫는 일은 잊어버렸다. 그가 갈지자걸음으로 마당을 건너가는 동안 그의 손에 들린 등불의 둥근 불빛도 좌우로 크게 출렁거렸다. 그는 본채 뒷문에서 발꿈치로 차 장화를 벗어버리고 부엌 술통에서 맥주 한 잔을 마지막으로 따라 들이켜고는 침대로 향했다. 침대에는 아내가 벌써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7p)
복서로 말하면 몸집이 어마어마하게 큰 짐승으로 키가 거의 열여덟 뼘이나 되고 보통 말 두 마리를 합쳐 놓은 것처럼 힘이 셌다. 그가 좀 멍청해 보이는 것은 코 밑의 힌 줄 때문이었다. (9p)
5 산문 작가의 4가지 동기
첫째, 순전한 이기심. 남들보다 똑똑해 보이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죽은 후에도 기억되고 어린 시절 자기를 무시했던 어른들에게 보복하고 싶은 욕망. (147p)
둘째,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 혹은 말의 아름다움과 말의 적절한 배열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지각하기. 하나의 소리가 다른 소리에 주는 영향을 인지하는 즐거움, 좋은 산문의 단단함을 알아보고 좋은 이야기의 리듬을 인지하는 즐거움. 가치 있다고 느껴지고 그래서 놓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어떤 경험을 공유해 보려는 욕망. (148p)
셋째, 역사적 충동. 사물과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한 사실들을 발견하며 후대를 위해 이것들을 모아 두려는 욕망. (148p)
넷째, 정치적 목적.('정치적'이란 용어는 이 경우 가능한 한 넓은 의미이다.) 세계를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 어떤 사회를 성취하고자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 보려는 욕망. (148-149p)
이 네 가지 동기의 크기가 서로 다르다. 조지 오웰의 경우 "정치적 글쓰기가 예술이 되게 하는 일"(152p)을 원했고 『동물농장』은 이러한 시도로 나온 소설이다.
일곱 계명을 한 줄로 요약한 격언인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는 나중에 가서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더 좋다."로 바뀌게 되는데, 원문으로 보면 "Four legs good, two legs bad."가 "Four legs good, two legs better."가 된 것이다. bad와 better의 발음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해봤을 때, 의미를 정반대로 완전히 바꾼 것에 비해 발음상의 변화는 크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예술이 아닌가?
6 작품 해설을 읽고
하나. 풍자와 우화
풍자는 현실과 1-1 연결 관계에 있고, 『동물농장』의 대부분의 요소는 스탈린 시대의 현실 세계와 일대일 관계에 있다. 반면 우화는 당대의 현실 문맥에 일대일로 엮일 필요 없이 '알레고리'를 통해 의미론적 확장이 가능하다. 『동물농장』은 "'독재 일반'에 대한 우의적 정치 풍자"(162)인 셈이다. 즉 이 작품은 독재 일반에 대한 우의적 풍자인 동시에 스탈린의 소비에트라는 역사적 풍자 대상이 분명한 작품이다.
둘. 오웰
오웰은 스스로 분명한 사회주의자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보면 사회주의 비판자 혹은 반사회주의인 것만 같다. 이런 오해는 조지 오웰의 신념을 '덜' 이해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가 작품들에서 문제 삼는 것은 "사회주의 혁명 자체가 아니라 그 혁명의 배반"(166)이다. "사회주의 혁명의 이름으로 사회주의를 배반한 혁명"(166)을 그는 비판하는 것이다. 『동물농장』에서 읽을 수 있는 메시지 중 하나는, "독재와 파시즘은 지배 집단 혼자만의 산물이 아니다. 권력에 맹종하고 아부하는 순간 모든 사회는 이미 파시즘과 전체주의로 돌입한다"(170)는 것이다.
7 벤저민
『동물농장』에 등장한 여러 등장동물들 중 가장 관심이 갔던 동물은 벤저민이었다.
나이가 가장 많고 성질도 제일 고약했다. 그는 좀체 입을 떼는 일이 없었지만 뗐다 하면 시큼씁쓸한 논평을 내뱉기 일쑤였다.... 농장 동물들 중 유일하게 절대로 웃지 않는 것도 벤저민이었다. 왜 웃지 않느냐 물으면 웃을 만한 일이 없다는 것이 대답이었다. 그러나 대놓고 인정한 적은 없지만 그는 내심 복서를 존경하고 있었다. (9p)
"그는 존스 시절이나 마찬가지로 느릿느릿 고집스러운 방식으로 일했다. 그는 일을 피하지 않았고 가외의 일이 생겼을 때 선뜻 자원해서 나서지도 않았다. 반란에 대해서나 그 결과에 대해 그는 아무 견해도 표명하지 않았다. (33p)
벤저민은 인간들이 하는 짓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쇠망치와 쇠지레를 든 일꾼 두 명이 풍차 밑동 근처에 구멍을 내고 있었다. 벤저민이 천천히, 거 아주 재미있다는 듯이 긴 주둥이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 그럴 줄 알았어. ... 저들은 구멍에 폭약을 집어넣으려는 거요." (99-100p)
늙은 당나귀 벤저민만은 알겠다는 듯 혼자 콧등을 끄덕였지만 아무 말도 하려 들지 않았다. (105p)
인간의 행동을 관찰해서 이해하지만 다른 동물들과 달리 분노하거나 좌절하거나 하지 않고 흥미롭다는 듯 지켜보기만 하고, '일곱 계명'이 계속해서 수정되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만 별 반응이 없다. 즉 벤저민은 자신이 이 일들과 관련이 없다는 듯 제삼자의 거리감을 취하고 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흥분한 감정적 반응을 한 사건이 있는데 바로 복서의 죽음이다.
동물들은 농장 축사 쪽에서 벤저민이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달음박질쳐 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동물들이 흥분한 벤저민을 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115p)
본인은 모든 걸 알고 있고 세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정확히 이해하지만 별 반응이 없고 감정적 동요도 없다. 평소 존경하던 복서가 끌려갈 땐 감정적으로 반응했다는 점에서, 그 외의 동물농장의 다른 모든 사건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반응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그 '모든 것'에는 세뇌된 다른 대중들의 우둔함과, 이 부패한 사회를 또다시 바꾸기는 불가하다는 것 또한 포함되어 사회의 진보나 개선에 대한 희망을 내려놓고 그토록 초연했던 게 아닐까? 힘없는 지식인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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