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하는 춘배
[독서] 추천하고 싶은 책; 『사랑의 기술』 본문
책 정보
- 『사랑의 기술』
- 에리히 프롬 저
- 황문수 역
- 문예출판사 (2025)
책을 읽고
드디어 다른 누군가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을 찾은 것 같다.
제1장에서 '사랑을 배운다'라는 개념이 나에게는 새삼 새로웠다. 우리의 부모님도 사랑을 했고 내 친구들도 사랑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 정말 '영 아니다' 싶은 저 사람도 사랑의 경험이 있다. 그러니 나도 때가 되면 사랑이 찾아오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사랑'이라는 명사와 '배우다'라는 동사는 나에게 '책'과 '먹다'의 관계와 진배없었다. 그러나 프롬에 따르면 사랑은 기술이므로 관심을 기울여 이론과 실천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맥락상 책의 제목은 사랑의 기술(技術)이겠지만, 사랑의 기술(記述)이라고 생각될 만큼 사랑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들어 있다. 인간 실존 문제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부터, 사랑의 여러 대상과 형태, 근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과 사랑할 수 있는 사회 형태의 청사진까지.
옮긴이의 말처럼, "심한 인플레 현상을 빚으면서도 동시에 가장 값싸게 된 것이 '사랑'이라는 말, '사랑한다'는 일"이다. 관계에서 사랑 대신 계산이 들어선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책이 아닐까.
추측하건대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기존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사랑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나도 이제는 어쩌면 '사랑'이라는 개념에 대한 한 사람의 인식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책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당당히 추천할 수 있을 책을 찾은 것 같다.
1. 사랑은 기술인가?
어떤 기술을 배울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는 무엇인가? ... 첫째는 이론의 습득, 둘째는 실천의 습득이다. ... 그러나 이론과 실천의 습득 외에도 어떤 기술을 숙달하는 데 필수인 세 번째 요인이 있다. 곧 기술 숙달이 궁극적인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사랑을 뿌리 깊이 갈망하면서도 사랑 이외의 거의 모든 일, 곧 성공·위신·돈·권력이 사랑보다도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우리의 거의 모든 정력이 이러한 목적에 사용되고 거의 모든 사람이 사랑의 기술은 배우려 들지 않는다. (18-19p)
2. 사랑의 이론
하나. 사랑, 인간의 실존 문제에 대한 해답
인간에게 있어 분리란 불안, 수치심, 죄책감을 야기하는 공포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가장 절실한 욕구는 이러한 분리 상태를 극복해서 고독이라는 감옥을 떠나려는 욕구이다."(26p)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는 질문의 답이 종교와 철학, 나아가 인간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은 일치 또는 합일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데 크게 ①도취적 합일, ②일치에 의한 합일, ③생산적 작업에 의한 합일로 나눠본다.
도취적 합일은 마약, 알코올, 성적 오르가슴 등으로 나타나며 강렬하고 난폭하며 몸과 마음 전체에 일어나고 일시적이고 주기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와 반대되는 합일의 형태로써 도취적 합일의 한계에 대한 해결책으로 자주 채택되는 것이 집단과의 일치에 바탕을 둔 합일이다. 이것은 지속적이지만 육체가 아닌 정신에만 관련되어 불완전하며, 자신과 집단의 차이를 제거하고 의견을 일치시키며 인간을 표준화하려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창조적 활동의 경우 자신과 해당 활동의 대상이 되는 외부 세계는 하나로 결합할 수 있지만, 현대 사무직 노동자는 기계, 관료 조직의 부속품에 불과하므로 노동의 결합적 성질은 없어진다. 즉,
생산적 작업에서 이루어지는 합일은 대인간적인 것이 아니다. 도취적 융합에서 이루어지는 합일은 일시적이다. 일치에 의해 달성된 합일은 사이비 합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합일은 실존의 문제에 대한 부분적 해답에 지나지 않는다. 완전한 해답은 대인간적 결합, 다른 사람과의 융합의 달성, 곧 '사랑'에서 찾아볼 수 있다. (36p)
사랑이라는 말에 있어 생각해볼 점은 "실존의 문제에 대한 신중한 해답으로서 사랑을 말하고 있는가, 또는 '공서적 합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랑의 미숙한 형태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37p) 하는 것이다. 공서적 합일은 어머니와 태아의 관계,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관계에서 볼 수 있는, 서로에게 의존하며 독립하지 못한, 통합성이 없는 융합이다. 반면 성숙한 사랑은 자신의 개성을 유지한 상태에서의 합일이다.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 사랑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다. (42p)
사랑의 능동적 성격을 보여주는 사랑의 기본 요소로는 보호, 책임, 존경, 지식이 있다. 보호와 책임이 없다면 남들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 존경이 없다면 사랑은 지배와 소유로 타락할 것이다. "어떤 사람을 존경하려면 그를 잘 '알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보호와 책임은 지식에 의해 인도되지 않는다면 맹목일 것이다. 지식은 관심에 의해 동기가 주어지지 않으면 공허할 것이다."(50p)
우리에게 동료와 나 자신은 수수께끼이므로, 이 비밀을 파해치려는 갈망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사랑의 행위에 있다. 인간에게 합일에 대한 보편적인 욕구가 있는데, 여기에 더해 남성과 여성의 극 사이의 합일에 대한 보다 특수하고 생물학적인 욕구도 일어난다. 남·여는 생리적·심리학적 양극성을 지니는데, 이성의 극과 합일함으로써 자기 내면에서의 합일을 달성할 수 있다.
둘.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
어린아이가 받는 어머니의 사랑은 수동적인 경험이다. "나는 나이기 때문에 사랑받는다. ... 어머니에게 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나는 현재의 나로서 사랑받는다.'"(64-65p)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므로 내가 해야 할 일은 없다. 부정적으로 말하면, 어머니의 사랑이 없는 경우 그것을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역시 없다.
어린아이의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원칙에 따르고,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는 원칙에 따른다.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는 것이지만 성숙한 사랑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66-67p)
시간이 지나 독립의 정도가 높아지면 아버지와의 관계가 중요해진다. 아버지의 사랑은 조건이 있는 사랑이다. 아버지는 세계를 가르쳐주는 사람이며 어린아이는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킬 때 사랑받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아버지의 사랑은 조건적이므로 내가 통제해서 사랑을 얻어낼 수 있다.
"성숙한 사람은 외부에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으로부터 해방되어 내면에 그 모습을 간직한 사람이다. ... 자신의 사랑의 능력에 어머니다운 양심을 간직하고, 자신의 이성과 판단에 아버지다운 양심을 간직함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다."(71p) "정신적 건강과 성숙의 기반은 어머니 중심의 애착에서 아버지 중심의 애착으로의 이와 같은 발달, 그리고 이러한 애착의 궁극적 종합에 있다."(72p)
셋. 사랑의 대상
본래 사랑은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다. 사랑은 한 사람과, 사랑의 한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세계 전체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태도', 곧 '성격의 방향'이다. (74p)
만일 내가 참으로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게 된다. (75p)
사랑의 대상에는 여럿이 있으며 그에 따라 사랑의 형태에도 차이가 있다.
① 형제애.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우리 모두는 하나라는 경험에 바탕을 둔다. 인간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차이들은 핵심으로 파고들면 나타나는 인간의 동일성과 비교하면 무시할만한 정도이므로 우리는 모두 동등하다. 형제애는 동등한 자 사이의 사랑이다.
② 모성애. 아이의 생명, 욕구에 관한 무조건적 긍정이다. "약속된 땅(땅은 언제나 어머니의 상징이다)은 '젖과 꿀이 넘쳐흐른다'고 묘사되고 있다. 젖은 사랑의 첫 번째 측면, 곧 보호와 긍정적 측면의 상징이다. 꿀은 삶의 달콤함, 삶에 대한 사랑, 살아 있다는 행복감을 상징한다. 대부분의 어머니가 '젖'을 줄 수 있으나 '꿀'까지 줄 수 있는 어머니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꿀을 줄 수 있으려면 어머니는 '좋은 어머니'일뿐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 ... 삶에 대한 사랑과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불안도 감염된다. ... 우리는 실제로 어린아이 — 그리고 어른 — 사이에서 '젖'만 먹은 자와 '젖'과 '꿀'을 먹은 자를 가려낼 수 있다."(79p) 성숙한 모성애는 아이를 지배,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분리를 견뎌내고 응원하고 그 이후에도 사랑해주는 비이기적이고 이타적이며 일방적인 사랑이다.
③ 성애. 앞의 두 유형과는 대조적으로 다른 한 사람과 결합하고자 하는 배타적인 갈망이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다'는 그 순간의 폭발적 경험과 혼동되면 성적 교섭에 의해 확립된 친밀감은 시간이 갈수록 희박해지며 새로운 사람과의 사랑을 추구하게 된다. 성애는 두 가지 견해로 바라볼 수 있는데, 사랑은 의지의 행위라는 견해와, 특수한 두 사람의 개인적 매력이라는 견해 둘 다 옳다.
성애는, 만일 이것이 사랑이라면, 한 가지 전제를 갖고 있다. 나는 나의 존재의 본질로부터 사랑하고 있고, 다른 사람을 그의, 또는 그녀의 존재의 본질에서 경험하고 있다는 전제를. (87p)
④ 자기애. "만일 나의 이웃을 인간으로서 사랑하는 것이 덕이라면, 나 역시 인간이므로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악덕이 아니라 미덕이어야 한다. ... 나 자신의 자아에 대한 사랑은 다른 존재에 대한 사랑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90p) 이러한 전제에 따라, 나 자신도 나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한편 이기심은 나 자신을 돌보는 게 아니라, 사실 그것을 실패한 것을 은폐하고 보상을 바라는 심리라는 점에서 자기애와 구분된다. 또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을 자랑하는 비이기주의 역시, 강렬한 자기 본위를 숨기고 있다. 즉, 자기 자신의 자아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면서 나와 같은 인간으로서의 타인도 사랑하는 것이 성숙한 자기애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⑤ 신에 대한 사랑. "인도인이나 소크라테스의 사고에서와 마찬가지로 노자의 사고에서도, 우리는 사고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단계는 '알 수 없다'인 것을 알게 된다. ... 최고의 신은 명명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철학의 귀결에 지나지 않는다. 궁극적 실재, 궁극적 일자(一者)는 언어나 사고로 파악할 수 없다."(111p) 그러므로 "신에 대한 사랑은 사고를 통한 신에 대한 지식이거나 인간의 신에 대한 사랑에 관한 사상이 아니라, 신과의 일치성을 경험하는 행위라는 결론에 도달한다."(114p) 이는 동양적인 사상의 주 흐름인데, 이에 따라 동양에서는 서로 다른 '사고'를 하는 사람과 싸울 이유가 없다는 종교적인 관용과, 행동 및 생활양식을 강조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올바른 사고에서 궁극적 진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서양 사상에서는 이교도에 관한 비관용 — 교의의 정형화를 위한 논쟁 — 이 생겨나고, 지적 성실성을 나타내는 과학의 발전이 발생했다. 한편 신에 대한 사랑도 어버이에 대한 사랑과 유사하게 환원될 수 있는데, "어머니인 여신에 대한 무력한 애착으로서의 신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하여, 아버지인 남신에 대한 순종적인 애착을 거쳐, 신이 이미 외부적 힘이 아니고 인간이 사랑과 정의의 원리를 자기 자신 속에 흡수하여 인간과 신이 일체가 되는 성숙한 단계에 이르고, 마침내 시적·상징적 의미로서만 신에 대해 말하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찰에서 신에 대한 사랑과 어버이에 대한 사랑은 분리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118-119p)
3. 현대 서양 사회에서 사랑의 붕괴
근대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노동의 규격화와 오락의 규격화를 통해 현대의 개인들이 분리 상태에서 느끼는 고독과 불안, 죄책감을 깨닫지 못하게 한다. 공정한 거래를 희망하는 현대인들에게 사랑은 두 사람간의 팀워크 — 평생 서로를 이해하고 예의 바르게 대하고 배려하는 것 — 로써 오해된다. 한편 19세기 "프로이트는 인간이 모든 여자를 정복하려는 무한한 욕망에 쫓기고 있고 오직 사회적 압력만이 이러한 욕망을 행동화하는 것을 저지한다"(133p)는 개념을 통해 자본주의가 인간의 자연적 욕구와 일치함을 보이려 했다.
"프로이트의 사랑 개념이 19세기 자본주의의 관점에 선 가부장적 남성의 경험을 기술한 것처럼, 설리반의 기술은 20세기 소외된 시장형 퍼스낼리티의 체험을 나타내고 있다."(135p) "상호 성적 만족인 사랑과, '팀워크'로서 고독으로부터의 피난처인 사랑은 현대 서양 사회에서의 사랑의 붕괴, 사회적으로 유형화된 사랑의 병리학의 두 가지 '표준적' 형태다."(135-136p) 결론적으로,
두 사람이 서로 그들 실존의 핵심으로부터 사귈 때, 그러므로 그들이 각기 자신의 실존의 핵심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경험할 때 비로소 사랑은 가능하다. ... 근본적인 문제는, 두 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에센스 차원에서 경험하는 것이요, 각자가 자신들에게서 도망치지 않고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됨으로써 서로 합일되는 것이다. (147-148p)
4. 사랑의 실천
기술의 실용에는 다음의 것들이 요구된다. 훈련, 정신 집중, 인내, 그리고 최고의 관심.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현대인들은 자기 훈련의 시간을 갖지 못하거나 어쩔 수 없이 일한 자신에 대한 보상으로 훈련 대신 게으름을 선택하고, 정신을 사로잡는 여러 가지 것들에 익숙해져 있으며, 인내 대신 신속하고 빠른 결과만을 바라고 특히 사랑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다. 보다 성공적인 실천을 위해서는 우선 훈련이 처음에는 힘들더라도 곧 즐거운 일임을 알아야 한다. 또 정신 집중에 대한 연습으로
바로 이 순간 하고 있는 활동이 유일하게 중요한 일이 되어야 하고 이 일에 몰두해야 한다. (162p)
정신을 집중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현재에,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는 것, 따라서 지금 무엇인가 하고 있으면서 다음에 해야 할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64-165p)
또 이런 어려운 일들을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연습해 나가야 한다.
한편 사랑을 위해서는 자아도취적으로 자신이 타인과 세계에 부여한 '상'이 아닌, 현실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 즉 객관성, 겸손, 이성이 요구된다.
나는 자아도취적으로 왜곡된 어떤 사람과 그의 행동에 대한 '나의' 상과, 나의 흥미, 욕구, 공포와는 관계없이 존재하는 나의 현실 사이의 차이점을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172p)
다음으로 신앙이 요구된다. 신앙이란 믿음과 확신의 문제인데, 신앙이 합리적이기 위해서는 그 믿음이 권위에 대한 복종이 아닌, 자신의 사고나 경험으로부터 나온 견고한 확신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해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그의 기본적 태도의 불변성, 그의 퍼스낼리티 핵심의 불변성, 그가 가진 사랑의 불변성을 의미한다."(175p)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런 보증 없이 자기 자신을 맡기고 우리의 사랑이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서 사랑을 불러일으키리라는 희망에 완전히 몸을 맡기는 것을 뜻한다."(181p) 그러므로 사랑은 신앙을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사랑은 활동이다. 활동이란 단순히 일을 하는 것을 넘어, 나의 에너지를 생산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므로, 사랑이 활동이라면, 나는 나의 에너지를 온전히 — 분업은 생산성에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 사랑받는 사람에게 쏟을 수 있어야 하며, 사랑에 대해서만 이러한 생산성을 유지할 수 는 없으므로 우리는 사랑뿐 아니라 다른 생활 영역 전반에 대해서도 자신의 관심을 온전히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편 오늘날의 자본주의의 원칙인 공정성과 사랑의 원칙은 양립할 수 없다.
현재의 체제 밑에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예외이다. (187p)
"사회는, 인간의 사회적이고 사랑할 줄 아는 본성이 그의 사회적 존재와 분리되지 않고 일체를 이루는 방식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 사랑만이 인간의 실존 문제에 대한 건전하고 만족스러운 대답이라면, 상대적으로나마 사랑의 발달을 배제하는 사회는 인간성의 기본적 필연성과 모순을 일으킴으로써 결국 멸망하지 않을 수 없다."(188p) "모든 사회와 사회적 집단은 그들의 자기 보존에 최상으로 기여하는 것을 사랑이라 내세우려고 한다. 예컨대 권위주의적 사회는 권위에 대한 사랑과 감사하는 마음을 사랑의 화신으로 본다. 그렇게 할 때만이 지배와 굴종을 바탕으로 세워진 사회제도가 최적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 시장경제에서 사랑의 능력은 누가 자신에게서 최고를 끌어내는가,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 동반자 관계와 관용과 페어플레이 능력이 있는가에 달려 있다. 누구나 '괜찮아야'하고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2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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